임조순 인천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임조순 인천시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어느덧 2022년도 달력도 한 장만 남겨뒀다. 지나간 한해를 마무리하고 다가올 한해를 계획하는 시간이다. 

월드컵과 전국적인 사건 사고로 국민적인 관심을 크게 받지 못하고 있지만, 올 12월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뜨겁게 보내는 곳이 있다. 내년도 지방예산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지방의회가 그곳이다. 1991년 지방의회가 복원되면서 지난 30여 년간 지방예산 제도는 많은 변화를 겪어오고 있다. 특히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 직속으로 ‘정부혁신지방 분권위원회’를 출범시켜 지방분권을 중요한 정책적 목표로 설정했고, 그 일환으로 재정분권을 위한 14개 과제를 제시하면서 지방자치의 핵심과제인 지방재정 문제를 국정과제로 담아냈다. 노무현 정부 이후 정부에서도 지방재정 문제는 중요한 의제로 다뤄졌고 다양한 정책을 추진해왔다.

오늘날 우리는 세계화와 지역화가 동시에 요구되는 시대를 산다. 또한 저출산과 고령화, 저성장화가 고착된지 오래다. 이러한 사회경제적 여건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뿐만 아니라 전세계가 선택한 것이 경직적 중앙집권체제를 탈피해 유연한 지방분권체제로의 전환이다. 이러한 ‘지방분권’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풀어내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 중 하나가 지방재정분권이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 정부는 재정분권을 위한 다양한 노력을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성과는 미미하고, 오히려 지방재정의 독립성이 더 훼손되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지방에서 쓰는 돈 중 스스로 벌어서 쓰는 비율을 나타내주는 지방재정 자립도의 경우, 지난 2003년 56.3%였던 것이 2020년 50.4%로 떨어졌다.

인천의 경우 더 심각해서 2010년 70%였던 재정자립도가 2022년 51.1%로 20% 가까이 추락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지난 20년 동안 국세 대 지방세 비율은 79.8:20.2에서 73.7:26.3으로 지방세 비율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 전체 세금 중에서 지방정부에게 들어오는 돈의 비율이 높아졌는데도 지방정부의 살림은 오히려 나빠졌다는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정부는 국세 대비 지방세 비율을 높이는 것을 재정분권의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선택했지만 재정분권은 오히려 후퇴하고 말았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걸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것은 국고보조사업이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 따른 4대 급여, 영아수당 등 엄청난 재원이 들어가는 국가사업에 대해 지방정부가 상당한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국고보조사업에 대한 지방비 대응은 2016년 21조 6천억 원이던 것이 불과 5년 후인 2020년 47조1천억 원으로 늘었다. 2016년 지방세의 28.4%가 국고보조사업비로 쓰였던 것이 2020년엔 지방세의 46.2%로 늘었다. 지방정부의 자주재원으로 쓰여야 하는 지방세의 절반 가량이 국가사업에 쓰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20년간 지방세 비율을 6.1% 올린 정부가 전국 어디서나 같은 기준으로 같은 대상에 대해 같은 사업을 추진하는 국가 사업에 지방비를 급격하고 과도하게 부담시키면서 재정분권을 정책목표로 추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동안 중앙정부는 수시로 새로운 사업을 의무화하면서 소요 재원은 국고보조금 등으로 일부만 보전해줬다. 심지어는 1~2년 일부 국비를 지원하다가 예산을 끊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중앙정부 관료들의 재정분권에 대한 의지를 의심하게 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바로 지방교부금에 대한 각종 패널티 제도의 운영이다(지방교부금은 자체만으로도 문제가 많으나 지면관계로 생략). 기획재정부는 지방재정 운용의 책임성과 건전성 확보라는 명분으로 교부금 지급에 있어 각종 패널티 제도를 만들어 지방정부 재정운용의 독립성을 침해한다. 법령 위반이나 수입 징수 태만 등을 이유로 교부금을 감액하는데, 이는 이중처벌금지의 원칙에도 어긋남은 물론 지방자치 자체를 부정하는 행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재정분권이 단순히 지방정부가 더 많은 세금을 걷어들이고 사용하겠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지방자치의 가치라고 보는 자율과 참여, 그리고 책임이 지역에서 지역주민들 주도로 실현되도록 지방재정의 제도적 기반을 중앙정부 의존형에서 자율적 책임 운영체제로 바꾸는 것이 재정분권의 목표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지역적 특성과는 관계없이 전국에 공통적인 기준을 적용해서 실시하고 있는 현금급여 중심의 기초생활보장, 기초연금, 장애인 복지 등의 사업은 중앙정부가 100% 재원을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주민들의 정책적 수용성이 높은 지역밀착형 사업을 개발하고 그 비용은 지방예산으로 충당하도록 해야 한다. 중앙집권체제를 즐기는 이들이여! 이제는 좀 내려 놓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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