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동
이강동

일본이 패전을 앞두고 전쟁에 몰두했던 곳은 태평양·중국·몬순·뉴기니·솔로몬 지역이었다. 전쟁지역이 여러 곳이다 보니 군 병력과 무기류·군수품들이 부족했다. "우리 손으로 숙적을 격멸시키자"라는 구호 따위를 내세우며 학생들을 동원시킨다. 

신촌 미군기지 터에 있었던 일본 육군병기본부는 군비 증강 계획을 목표로 1940년 4월 창설된다. 육군병기본부는 기존의 육군 조병창과 육군 병기창을 합병시킨 것이다. 육군 조병창은 1912년 창설됐다. 화학무기 연구소, 무기류 생산 계획과 보급을 맡았던 부서다. 육군 병기창은 1913년 창설됐다. 무기류 저장·보존·수리·지급·교환·폐품 처리, 요새 지역 포대 설치 공사 등을 맡았다. 육군병기본부로 격상되면서 항공공창도 함께 운영하게 된다. 전투기의 특수 부품과 소재들을 제조·생산했다. 

일본은 여러 곳에서 전쟁을 치르다 보니 전세가 불리해지고 무기·군수품이 부족했다. 구리·쇠 등 금속품을 공출하기 시작한다.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품질 좋은 놋그릇·수저까지 공출해 신촌 육군병기본부로 가져와 무기 제조에 사용한 것이다. 크롬강·코발트·티탄·베릴륨·지르콘 같은 재료들도 육군병기본부로 수집해 폭탄 제조에 사용했다.

무기 제조 인원이 부족하자 인천·서울지역 학생들이 동원된다. 1차로 360명을 동원시킨다. 인천고·인천여고·인천공고·경성공고·인천중학 남녀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이 위험지대에서 전쟁에서 사용할 무기를 제조·생산했던 것이다. 학생들은 이곳 책임자였던 와키의 지휘와 구호·설교 등으로 분투를 강요받으며 일하게 된다. 

"펜 대신 해머를 들고 일하는 학생들이 있다. 무기 제조공장에서 일하는 학생들은 미국·영국의 숙적들과 싸우는 선배들이다. 우리도 안이한 학생 생활만으로 어떻게 마음 편할 수 있을까. 무기 증산에 우리 젊음을 바치자. 학생복 아닌 작업복을 입고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전쟁터의 선배들을 생각하자. 우리의 고생쯤 더욱 분발해 어제보다 오늘은 무기 증산에 배를 목표로 싸우자"라는 구호로 강요하면서 학생들에게 일을 시킨 신촌 일본 육군병기본부였다. 

여러 가지 금속 소리가 공장 안에 가득했다. 일하는 학생들은 모든 정신을 손끝으로 모으고 있다. 우리의 누이들이 복잡한 정밀기계 앞에서 불타는 정열을 기울이는 모습들이다. 손에는 검은 기름이 흠뻑 젖은 굳건한 산업 여성 그것이었다. 무기 제조에 쓰일 정밀금속 부속품들이 번쩍인다. "한 대라도 더 많이 생산해 전쟁터에서 싸우는 용사들에게 보답하자." 이러한 구호로 전력 증강을 계획대로 완수하려는 의도로 인천·서울지역 학생들을 동원시킨 것이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학생들이 심혈을 경주해 만든 무기들은 미국·영국의 숙적들을 전멸시킨다. 일본 정부는 학생들과 일반 직원들이 생산하는 무기들이 계획대로 된다면 전쟁 승리는 자신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을 정도로 신촌 일본 육군병기본부를 특별정책 부서로 여겼다.

신촌 미군 기지에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육군병기본부 시설물을 보존하자는 시민단체가 인천시를 상대로 강력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될 가치를 충분히 가졌다는 학자들의 주장도 나온다. 일본 정부가 정략적으로 창설한 육군병기본부에 동원된 학생들의 피·땀·눈물로 생산된 무기들이 태평양전쟁에 사용됐다는 자료들도 모아 세계유산 등재에 나선다면 더 수월하게 성과를 이루리라 본다. 

아직 필자가 현장을 확인해 보진 못했지만 육군 병기본부시설물이 온전하게 보존돼 있다면 세계적 관광지가 될 수 있다는 포부도 가져본다. 신촌 미군기지는 앞으로 시민공원으로 조성한다고 하니 일본 육군병기본부 시설물 보존은 학생들의 현장학습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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