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동네에 있는 관공서에 가서 주차할 때마다 곤혹스럽습니다. 주차장 자체가 협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현관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는 텅 빈 장애인용 주차 공간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 중에는 "열 대밖에 주차하지 못하는 곳에 두 자리나 장애인을 위해서 만들어 놓다니!"라는 볼멘소리도 간혹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불평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 장애인이 내 부모님이라면’이라고 상상해 보면 불평이 오히려 감사함으로 바뀝니다.

누군가에게는 절실하고 간절한 자리일 겁니다. 언제일지 모르지만, 그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왔을 때 비어 있는 그곳을 보고 안도할 겁니다. 비록 그분이 누구일지도 모르고 언제 올지도 모르지만, 그분을 위해 비워 두는 것이 배려입니다.

「언어의 온도」(이기주)에 저자는 기차 안에서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례를 전하고 있습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인데, 창밖을 응시하던 중년 사내가 돌연 "여보, 저 들판이 온통 초록빛이네!"라고 하자 아내는 미소를 지으며 "맞아요. 제대로 봤네요"라고 대꾸합니다. "우와! 태양은 불덩어리가 같고, 구름은 하얗고, 하늘은 파랗고…"라며 쉬지 않고 말했습니다.

그런 소리를 불편하게 여긴 승객 하나가 다가와 "아주머니, 남편 좀 병원에 데려가세요. 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라고 짜증을 냈습니다.

순간 기차 안은 어색한 정적이 흘렀습니다. 한 승객은 딱하다는 듯 "맞아. 정상이 아니야"라며 빈정거리기까지 했습니다. 아내는 이런 시선을 예상했다는 듯 입을 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사실은요, 제 남편은 어린 시절에 사고로 시력을 잃었어요. 최근 각막을 기증받아 이식수술을 받았고, 오늘 퇴원하는 길이에요. 이 세상 모든 풍경이, 풀 한 포기가, 햇살 한 줌이 남편에게는 경이로움 그 자체일 겁니다."

이 글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아픈 사연 하나쯤 없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에게나 자초지종을 말할 수 없을 것이고, 아무 때나 상대의 말을 진지하게 들어줄 수도 없을 겁니다. 그렇게 할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겠지요.

승객은 ‘지하철은 공공이 이용하는 장소니까 예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저 남자가 큰소리로 떠든다. 가서 조용히 하라고 말해야겠다’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런데 아내의 말을 들은 후 승객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요. 아마 그 남자가 계속 그렇게 큰소리로 외쳐도 불편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리고 승객 역시도 자신이 잊고 살았던 파란 하늘과 바람결에 흔들리는 풀들의 경이로운 흔들거림과 환상적인 뭉게구름을 바라보는 여유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늘 존재하고 있었는데도 보고 느끼지 못하며 살아온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읽었던 글이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느 아저씨가 노인을 부축하며 천천히 육교를 내려가다가 지갑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는 노인의 몸을 부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갑을 주울 수가 없었는데, 그때 마침 지나가는 학생이 있어 "지갑 좀 주워 줄래?"라고 부탁했지만 뜻밖에도 학생은 못 들은 척하며 그냥 지나쳤다고 합니다.

그날은 아들의 생일이어서 노인을 서둘러 모셔다 드리고는 집으로 갔습니다. 집에는 아들 친구 몇 명이 벌써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학생이 유독 낯익었습니다. 바로 육교에서 지갑을 주워 달라는 자신의 부탁을 무시했던 그 학생이었습니다.

아들을 조용히 불러 그 학생에 관해 물었더니 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쟤는 정말 착하고 공부도 잘해요. 그런데 좀 불쌍해요. 청각장애인이거든요."

아저씨는 멀찍이서 그 학생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중얼거렸습니다. "얘야, 의심해서 미안하구나."

행복한 삶은 의외로 쉬울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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