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예 동두천시 불현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한지예 동두천시 불현동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날이 제법 추워졌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생활고에 시달리다 생을 마감하는 가족들의 뉴스가 자주 나온다. 이런 기사에는 어김없이 복지 사각지대라는 말이 나오고, 이 같은 사건들을 계기로 기존 제도와 법령의 한계가 지적되며 정부는 끊임없이 관련 법을 개정하고 제도를 개편한다.

이번에도 정부는 ‘복지 사각지대 발굴, 지원체계 개선 대책’ 방침을 발표했다. 주된 내용으로는 수도·가스 요금 체납 정보 등을 추가한 총 44종의 정보를 활용해 위기가구를 발굴하고, 연락 두절 가구의 소재 파악 시 통신사가 보유한 주소와 연락처 등의 정보를 입수하도록 했다. 

또한 주민등록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가구주 이름만 작성하도록 된 전입신고서 서식을 가구원의 연락처도 기입하도록 변경할 예정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제도적 개선만으로는 이번 신촌 모녀, 수원 세 모녀 같은 사건들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고도화될수록 예상치 못한 문제는 항상 발생하고, 해결책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모습에 지나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언제까지 정부의 제도나 정책에만 기댈 수 없다. 정부가 위기가구에 관심을 갖는 것만큼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우리 지역의 문제로 인식하고 위기가구를 조기 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이웃 네트워크’의 작동이 필요하다.

이번에 문제가 됐던 실거주지와 주민등록지가 다른 경우 당사자들이 인근 행정복지센터나 관공서에 방문해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소재를 파악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웃이 집세가 밀리거나 편의점 또는 동네 슈퍼에서 외상을 자주 하거나, 외출하는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면 이는 주변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 이런 징후들을 포착하고 관공서 등에 방문해 대상자들의 생활 형편과 거주 상황을 한번 확인해 달라고 하는 관심 어린 말 한마디가 지금까지 미디어에서 접했던 생활고로 인한 비극을 예방하는 데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정부는 각종 공과금 체납 여부 등을 연계해 위기가구를 조기 발견하겠다고 했지만 이런 위기가구들을 가장 먼저 눈치채는 이는 결국 옆에 있는 이웃이다. 

지금은 정보화 시대를 넘어 ‘사물인터넷(IoT)’이라는 말이 등장하며 여러 사물에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돼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초연결사회’다. 직접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것보다 SNS 등에서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일이 보편화된 세상이다. 

하지만 내 이웃의 안부를 묻고 안녕을 확인하는 일은 온라인에서는 한계가 있다. 이것이 바로 거의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처리 가능한 초연결사회 속에서도 오프라인을 통한 사람과의 관계가 필요한 이유다.

이번 겨울에는 주변의 이웃에게 아주 작은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시작으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고 서로의 평안을 기원하며, 생활고로 인한 비극적인 죽음에 관한 뉴스 대신 온정을 나누는 연말연시가 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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