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마르셀 뒤샹의 ‘샘’이라는 조형물은 1900년대 초반 대량생산된 평범한 소변기를 구입해 그것을 예술작품이라고 선언하고 뉴욕 전시회에 출품하고 나서 유명해졌다. "아름다움은 보는 이의 눈에 달려 있다"는 인본주의의 미학을 내걸었다고 한다.

학창시절 부전공으로 철학과 미학(美學, aesthetics)이라는 과목을 선택해 그야말로 어렵고 난해한 이야기를 새겨들으려 많은 노력을 했다. 미(美)나 예술에 관한 이론은 멀리 고대 희랍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학문으로서 ‘미학’이라는 명칭은 그 어원적 의의에 따라 ‘감성적(感性的) 인식의 학문’이라고 규정했다. 미학은 미적 사실 전반에 걸쳐 가장 근본적인 것이 무엇이냐에 관한 견해이며, ‘아름다움’을 성립시키는 주관적 원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본질을 탐구하는 개인적 노력이라고 하며 우리의 인생을 충실하고 행복하게 해 준다고 한다.

오래전 은행 재직 시절 ‘맥킨지’나 ‘베인앤드컴퍼니’ 같은 글로벌 컨설팅회사와 경영전략 관련해 같이 일한 경험이 있다. 그러면서 그네들이 제시하는 바 여러 멋지고 대단한 제안들을 의도적으로 격하시키고, 우리나라 금융시장과 고객들의 정서를 앞세우며 반박하고 배척하는 일에 몰두했다. 아마도 지금 생각하니 괜한 자격지심이었고, 값비싼 컨설팅비에 비해 현실적인 내용이 없고 나도 그 정도는 충분하고도 넘치도록 알고 있다는 오만과 편협함이 작용했으리라 본다. 

파트너로 같이 일하는 영국에서 온 여자 직원은 그런 나를 두고 본인이 만든 제안서를 읽을 때는 ‘아름다운 생각’을 하며 봐 달라고 애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 부탁과 달리 내게 제안한 많은 내용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가는 날까지 자신의 ‘아름다운’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으로 지금껏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서는 오직 나 자신하고만 의논하면 된다.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이 좋은 것이고, 내가 나쁘다고 느끼는 것은 나쁜 것이다."

미학을 통해 배운 장 자크 루소 「에밀」의 그 대목이 십수 년이 지나도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대한민국 시중은행 일선 영업점 현장 필드에서 뛰며 배운 우리 국민, 우리 고객들의 정서가 금융기술자 같은 해외 경영컨설턴트의 선진적이고 특화된 ‘고객관리전략’이라는 수용 제안을 쉽게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이다. 고객이 주는 기초정보로 관계마케팅을 하자며 준 자료를 예술이라고 나를 설득했지만 나는 분명하게 아니다라고 반응을 보였다. 우리나라 고객이 은행 거래 시 제공하는 정보가 10여 가지에 불과했던 시대의 이야기다. 

이제 ESG는 모든 조직 기업·기관이 지켜야 할 룰, 코드로 확산 이해되고 있다. 마치 하나의 과제, 이슈에 모든 에너지가 몰려드는 그런 느낌이다. 최적의 지표나 관리철학도 없이 등급부터 던져 놓고 보고서 작성부터 하라는 것이다. 예술인지 아닌지 보는 사람의 아름다운 관점을 고려할 틈도 없이 그냥 한쪽을 매몰시켜(sunk capital) 버리는 셈이다.

이미 공유할 수 있는 내재화를 위한 교육, 연수는 넘치도록 충분히 자료에 담겨 있으며 그냥 즉시적으로 실천하면 될 일이다. 경영자의 철학과 구성원의 팔로워십, 주변과의 질서정연한 선한 관계자산 확보는 매 순간 일상에서 생각하고 판단하며 실천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면 된다. 그러면 될 일을 내재화란 이름으로 교조적 방식의 설익고 실천적이지 못한 잣대를 들이대며 "ESG는 바로 이것이다"라고 하면 편한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을까? 

얼마 전 장례식장 문상객 식사 자리 식탁에 놓여져 있는 비닐보에 다음과 같은 작은 글귀가 적혀 있었다. (중략) … "100% 생분해성 원료로 만들어진 식탁보는 스스로 분해돼 자연으로 되돌아가는 아름다운 제품입니다." 이렇듯 도처에서 발견되는 환경과 선한 사회, 정도경영이 그야말로 아름답게 우리 주변에 열매를 맺어 가고 있는 중이다. 의식의 깨어 있음을 주도하고, 실천할 수 있는 과제를 스스로 풀게 하며, 그 길이 지속가능한 공동선으로 인지되게끔 프로그램이나 교육연수, 회의체 등을 통해 우리 마음, 우리 사회에 넓고 깊게 펼쳐져 가도록 해야 한다. ‘ESG’가 중요하냐 ‘지속가능경영’이 중요하냐를 두고 이야기할 필요는 더더욱 없다. 모두에게 유익한 아름다운 생각, 실천이면 그것으로 됐다.

"나는 말이야 아름다운 꽃을 한 송이 소유하고 있는데 매일 물을 줘. 세 개의 화산도 소유하고 있어서 매주 그을음을 청소해 주기도 하지. 내가 그들을 소유하는 것은 꽃에게나 화산에게나 모두들께 유익한 일이야." 이 글은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 네 번째 별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ESG는 우리 모두의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위한 정신위생(mental hygiene)에 대한 사회적 합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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