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 기간 활동했던 단체의 차기 회장이 찾아와 기자에게 다소 충격을 주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기자는 그 단체를 최선을 다해 이끌었던 회원으로서, 선배로서 조언과 자문을 해 줬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단체를 이끌던 책임자는 "스스로 알아서 하는데 간섭과 참견을 하는 바람에 1년 동안 단체를 이끌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며 하소연을 하더라는 얘기였다.

그 말을 들으니 오지랖, 조언, 자문, 간섭, 참견이라는 단어가 머리를 스쳤다. 기자는 그동안 단체의 전통이나 관례를 알려 줬고, 조언이나 자문을 할 때도 상대를 억압하거나 윽박지르지 않았다. 도움이 되라고 한 얘기를 그렇게 받아들였다니 너무나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설령 그런 마음이 있었다면 직접 말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들으니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렇다고 똑같이 욕을 하자니 기자 마음이 허락하지 않았다. 대다수 사람들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듣는다.

같은 말이라도, 아무리 좋은 뜻으로 상대방에게 얘기를 해줬다손 치더라도 상대방이 간섭과 참견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처지가 다르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에는 차이가 있을 도리밖에 없다. 해서 오지랖, 조언, 자문, 간섭, 참견은 비슷한 상황에서 생기는 말이 아닐까 싶다.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이 도움이 된다고 느끼면 조언이지만, 그 조언조차도 불필요하다고 느끼면 간섭으로 들릴 테니 말이다.

그래서 기자를 일깨워 준 그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그동안 기자도 모르게 상대방의 처지를 헤아리지 않고 말했을지도 모르니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만들어 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혹여 기자가 한 말 때문에 힘들었을 주변 분들에게도 사과의 말을 전한다. 누군가에게 조언이나 자문을 할 때 곡해하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더욱 세심한 노력을 하겠노라 다짐한다. 불필요한 조언은 자제하고 다른 사람이 기자에게 하는 조언도 액면 그대로 수용하겠노라 다시 한번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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