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나무를 잘 타는 원숭이가 때로 나무에서 떨어지는 이유를 한비자의 "수영을 잘하는 사람이 물에 빠지고, 말을 잘 타는 사람이 말에서 떨어진다"는 말에서 유추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잘한다고 믿고 방심한 결과겠지요. 방심은 교만함에서 나옵니다. 교만한 태도는 ‘나’만이 최고이고 최고여야 한다는 이기심에서 비롯됩니다.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이 교만과 결합되면 수많은 화를 부릅니다. 정치인들의 장점 중 하나는 말을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장점이 간혹 엄청난 설화를 일으키는 모습을 오늘도 뉴스에서 적잖게 볼 수 있습니다. 그 이유 역시 그들의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교만의 늪에 빠진 어린 제자에게 엄청난 충격을 가한 스승의 사례가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장웅연)에 있습니다.

구지 선사는 누군가가 도(道)를 물을 때마다 말 없이 엄지손가락만을 치켜세웠습니다. 곁에서 시중을 들던 동자승이 스승을 흉내 내고 다녔습니다. 그러자 ‘어린 생불(生佛)이 났다’는 소문에 온 동네가 떠들썩했습니다.

어느 날 스승은 조용히 동자승을 불러 "어떤 것이 불법인고?"라고 물었더니, 동자승은 우쭐대며 늘 하던 대로 엄지를 들어 올렸습니다. 그때 스승은 품에 숨겼던 칼을 꺼내 아이의 엄지를 잘라 버렸습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는 아이를 불러 세우고는 다시 "어떤 것이 불법인고?"라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습관적으로 엄지손가락을 세웠지만, 그것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 순간 아이는 문득 깨달았다고 합니다.

아이는 스승의 엄지 척이 마냥 신기했을 겁니다. 사람들이 지혜를 구할 때마다 스승은 늘 지그시 미소지으며 엄지 척만 했으니까요. 그러면 사람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합장하며 감사를 표했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이제 답을 찾았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동자승은 모든 문제의 정답은 ‘엄지 척’에 있다고 믿었을 겁니다. 그래서 스승이 절을 비울 때 스승을 뵈러 온 신자들의 질문에 자신도 ‘엄지 척’을 했던 겁니다. 엄지 척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단한 스승 밑에서 배운 동자승이라 역시 다르네!"라며 칭찬했습니다. 사람들의 칭찬이 거듭될수록 동자승의 교만은 하늘로 치솟았습니다. 그래서 늘 엄지 척을 하는 게 이제는 그의 습관이 돼 버렸습니다. 자신이 대단하다고 착각하면서 말입니다.

자신만의 정답을 찾을 생각은 하지 않고 스승의 엄지 척을 뜻도 모르고 흉내 내는 동자승에게 스승은 처절한 고통을 가함으로써 가르쳤습니다. 엄지손가락을 잘라 버렸으니까요.

얼마나 아팠을까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자신의 손을 보고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너무나 무서워서 달아나다가 스승의 질문에 습관적으로 엄지 척을 했지만 자신의 손가락은 없었습니다. 그때 아이는 깨달았습니다. 무엇을 깨달았을까요? 그것은 동자승만이 알 수 있겠지만, 선문답의 문외한인 저로서는 적어도 그 아이는 자신이 교만했었다는 사실과 이제부터는 자신만의 길을 찾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깨달았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설화를 일으키는 정치인들과 나무에서 떨어지는 원숭이는 똑같은 이유로 그런 일을 당합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결과는 매우 다릅니다. 원숭이의 교만과 방심은 제 한몸만 다치는 것으로 끝나겠지만, 정치인들의 설화는 국민을 분열시키고 불안감을 조장할 뿐만 아니라 설화의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경을 쓰느라 자신들의 고유한 업무까지도 뒤로 미루게 함으로써 결국에는 국민 모두의 엄청난 피해로 이어집니다.

세계적인 대문호 톨스토이는 "겸손한 자는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받는다. 사람은 누구나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런데 왜 겸손하게 되려고 노력은 하지 않는 걸까?"라고 교만한 자들을 꾸짖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그들이 처음 정치에 입문했을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겸손함을 되찾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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