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구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초빙교수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초빙교수

새벽 기온이 영하 10℃ 이하로 뚝 떨어졌고, 저수지는 꽝꽝 얼어붙었다. 숲속의 고라니, 노루, 너구리, 텃새들도 힘든 시절을 넘어야 한다. 목마른 짐승들은 새벽녘 마을 어귀로 내려와 컹컹 울어 댈 것이다. 누군가는 숲가에 짐승들이 먹을 만한 곡식들을 놓아 둘 것이고, 못된 이들은 올무를 놓거나 총을 겨누기도 할 것이다. 삭풍을 맞으며 벌거벗은 채로 엄동설한을 잘 견뎌 낸 나목(裸木)만이 따스한 봄을 맞이할 수 있다. 환경에 적응하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survital of the fittest)의 원리가 동식물에게 처절하게 적용되는 혹독한 추위다. 옆에 존재하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이러한 엄동설한을 견뎌 낸 존엄한 것들이다.

 생존하는 모든 것들은 환경 적응을 통해 생명을 유지한다. 사람도 이런 적자생존의 원리를 따르지 못했더라면 생명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가 「이기적 유전자」에서 말했듯이 모든 생명체는 DNA 또는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생존 기계이며, 자기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는 이기적 행동을 수행하는 존재다. 그에 의하면 인간은 "유전자에 미리 프로그램 된 대로 먹고, 살고, 사랑하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라는 말과 같다. 그러나 인간은 타자와 함께 공존하기 위해서 이기적 유전자 위에 이타적 유전자를 덧씌우지 않을 수 없다. 나만을 위한, 내가 속한 작은 집단만을 위한, 이기심만으로는 공존할 수 없었음을 역사를 통해 체득했기 때문이다.

 공자, 석가모니, 예수가 나타나 타자를 위한 예의, 자비, 사랑을 베풀라고 오래전 가르쳤지만 그 말은 아직도 원점을 맴돌고 있다. 수많은 철학자가 나타나 삶은 이렇게 살아야 된다고 많은 저서를 남겼지만, 앞으로도 다양한 철학자들이 새로운 철학을 들고 등장할 것이다. 철학자 헤겔(Hegel)은 개인의 이기심과 욕심보다는 예술, 철학, 종교를 순화시켜 그 안에 세계적 보편성과 타당성을 부여할 때 어디선가 ‘절대정신’이 탄생하고, 그 아래 여러 나라들이 하나로 묶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많은 시인과 소설가들이 나타나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인간이 잘못된 길을 걸어가면 어떻게 파멸되고 파탄 나는지를 소설 속에 그려 놓았지만, 그래도 비슷한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반복돼 나타난다.

 이러한 인간의 행위 뒤에는 유전자 속에 이기적 욕심이 더 크게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나만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칠 때 공존하기 쉽지 않음을 알았다. 홉스(Hobbes)는 자연상태에서 ‘인간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계약에 의해 정부를 구성하고 욕심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탐욕에는 리바이던(Leviathan)과 같은 사악한 괴물이 존재하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동물적 이기심을 내려놓고 타인을 배려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많았지만 스콧 니어링(Scott Nearing, 1883~1993)의 심플한 삶은 오히려 나의 눈길을 붙들었다. 그는 내면의 욕망을 덜어내고 자연으로 돌아가 소박한 농촌생활을 즐겼던 사람이다. 그는 대학교수를 잠시 한 적도 있지만 산업자본주의와 전쟁, 아동의 노동 착취에 반대 목소리를 높이다가 정치권과 갈등을 빚고 미국 버몬트에 귀농생활을 했다. 그는 숲속에 돌담집을 스스로 짓고 농사를 지으며 자급자족하고, 세상과의 소통도 게을리하지 않으면서 「스콧 니어링 자서전」, 「조화로운 삶」, 「조화로운 삶의 지속」이라는 책도 내놓았다.

 스콧 니어링은 욕망을 다운사이징해 탐욕과 분노를 줄이고, 가끔 여행을 하면서 100세에 스스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곡기를 스스로 끊으며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옮겨 감이라는 생각을 죽을 때까지 확고하게 유지했다. 그의 인생은 그의 책 제목처럼 이기적 욕심을 버린 세상과의 ‘조화로운 삶’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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