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아침 7시 20분쯤이다. 아직도 사위는 어둠자락에 끌린 채로 긴 목을 늘이며 여명을 고대하는 중이다.

천장 위를 날아가는 기러기떼들이 소리를 질러가며 파주 들판의 어둠을 힘차게 쪼아댄다. 몇 달 만에 고국에 돌아와 듣는 반가운 소리들이다. 지난 6월쯤 중앙아시아에 도착했다. 파미르 고원, 천산 산맥, 키질 사막, 이식쿨 호수. 그리고 수 천 년 걸쳐 만들어진 문화의 흔적들을 두루 두루 살피고 난 후에  사마르칸트 시내에 정착했다.

그때 든 생각이다. ‘사람을 찾습니다.’ 만약 이런 제목으로 글을 쓴다면.

그런데 곧 사람을 찾았고, 사람들을 매일 만나면서 몇 달 동안 살았었다.

사실 늦은 나이에 사마르칸트 대학에 직장을 정하고, 한동안 생활의 터전으로 선택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역사학자로서 우리 고대 문화의 원형을 추적하는 연구대상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또 내가 내년 늦봄 날에 야심차게 추진할 ‘유라시아 flow’라는 프로젝트의 거점으로서 가장 적합했기 때문이다. 더불어 앞으로 한국이 해외를 상대로 추진할 국가의 발전전략에 적합한 지역이라는 정치 경제적인 관점도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가 있었는데, 지극히 주관적인 마음과 개인적인 이끌림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이지만, 처음 이 지역에 몸을 맡겼을 때 특별한 감정을 느꼈었다. 장엄하고, 솔직하고, 덜 다듬어진 탓에 야생의 모습을 남긴 자연이 불러일으킨 감동이 온몸을 떨리게 만들었다.

또 하나 막연한 것이지만, 기대한 그 무엇(?)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올 때마다 비록 짧게 스쳐간 사람들은, 내 마음 속 깊은 곳의 둥지를 건드렸다. 우리와는 뭔가 분명히 달랐다. 어느 새 잊어버린, 내팽개쳐버린 원래 우리의 마음과 내음이 배어 있었다.

마주칠 때마다 할머니의 웃음 띤 얼굴, 거칠지만 부드러운 손길이 떠올랐고, 치맛자락에 묻어 다니던 옛날 내음, 흙내음이 코 속으로 스며들었다.

나는 실은 그악해지는 사회에서, 사람다운 삶을 살기에 힘들다는 탄식을 하도록 변질된 세상에서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래서 늘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명제가 항상 압박을 했다.

‘사람을 찾는다.’

어려서부터 밥상머리에 앉아 아버지께 들은 잔소리들. ‘사람은 사람다워야하는 거란다.’

그런데 중학교를 다니던 어느 날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었다. 어린 나의 눈에도 사람답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지만 한국 사회는 전체가 크게 변질됐고, 사람다운 사람을 만나는 게 어려워졌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는 그 곳을 때때로 떠올렸고, 그 곳에 가면 덩달아 그런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살 수 있겠지, 그럼 구겨지고, 멍 자국이 많아진 마음도 편해지고, 덩달아 잃어버렸던 사람을 조금이라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기대했다.

그래서 ‘사람을 찾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무지한 한국인들의 기준으로 보면 남루한 사람들이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중앙아시아 지역, 이 도시를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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