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도시의 이곳저곳을 찾아다니고, 도시를 벗어나 자연과 더 가까운 곳으로 놀러가고, 때로는 고대의 유적지를 찾아 멀리 열 시간씩도 기차를 타고 다녔고, 심지어는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들을 찾아다녔다. 그러면서 아주아주 자주 사람들을 만났다. 한국에서 그리워했었고 만나기를 고대했던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 장대하고 깊은 파미르고원을 일주할 때는 시시각각으로 우리와는 다른 온갖 모습과 마음을 담은 자연과 생태에 감격스러워했다. 그런데 또 다른 감격은 산을 닮은, 산이 돼 버린 듯한 그들의 표정과 행동, 거기에 배인 마음씨와 품격이었다. 낭떠러지 위를 달리는 차 안에서 보는 것조차도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회색 폭류들로 채워진 강들, 우리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산자락 끝에 간신히 돌집을 쌓아 걸쳐 놓거나, 거대한 쇠갈고리에 부스러진 듯 날카롭고 거칠고 좁은 골짜기 틈새에 박혀 숨은 듯 살아가는 사람들. 

그 가난해 보이는 사람들은 마주치는 내게 아무런 물건을 주지 않고도 큰 선물을 듬뿍듬뿍 안겨 줬다. 오로지 친절한 행동과 너그러운 마음씨만으로도 채 아물지 않은 상처와 흉터들이 드러난 내 혼을 치유해 줬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고, 적어도 어린 날의 나를 떠올리면 우리도 그랬던 것인데. 파미르의 겹겹 산자락들을 헤치고 기어 들어가서 힘겹게 만난 부룬쿨호는 내게 참기 힘든 감동을 준 세계 몇몇 정경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런데 그 못지않게 감동에 젖게 한 것은 사람들, 그 호숫가에서 살아온 사람들 자체였다. 위대한 자연은 굳이 정상까지 안 올라가 보고, 안까지 헤집어대지 않아도 가치를 알고 의미에 전율한다. 문화와 역사도 마찬가지이고,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사마르칸트. 매일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아무런 관계도 없고 자신들에게 이익을 줄 만한 사람도 아닌 내게 친절했다. 길을 물어보면 손짓, 몸짓, 눈빛까지 동원해 가면서 친절하게 알려 줬고, 때로는 방향을 알 만한 곳까지 함께 걸어가 주기도 했고, 자기 차를 태워 줬다. 갑자기 현지 돈이 떨어진 내게 돈을 쥐어 준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는 10분 남짓 손짓과 표정으로 마음을 주고받았을 뿐인데도 비록 가짜지만 청자로 만든 행운의 거북이를 선물로 준 택시 기사도 있었다. 가난한 나라의 그들이 흠모하는, 부자 나라인 한국에서 온 관광객 같은 사람한테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어느새 날이 밝아지고, 기러기들은 텅 빈 들판 곳곳에 옹기종기 모여 떨어진 낱알들을 쪼아 먹는 중이다. 난 기러기다운 기러기들의 모습을 보면서 두고 온 그들을 떠올린다. 나의 나이들은 조교인 알리 선생, 고등학교 선생님인 그는 몇 년 전 4년간의 노동자 생활을 끝내고 돌아와 한국으로 박사과정을 준비 중이다. 또 매일 만나는 동네 큰 슈퍼인 파로본(PAROBON)의 직원들, 삼순(만두 일종)을 파는 식당의 아줌마들과 직원들, 버스에 타면 선뜻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는 학생들, 시장에서 만나는 한국말 하는 아저씨, 수업시간에 내 입을 따라다니는 힘찬 눈망울을 가진 학생들, 또 몇 번이나 들어가 춤도 추고 음식도 얻어 먹었던 동네 결혼잔칫집 사람들, 그리고 길가에서 스쳐 간 이름 모를 많은 사람들. 그들은 사람을 찾으러 간 내게 사람의 모습을 보여 주고, 현대문명과 한국의 미래에 희망을 품게 해 줬다.

이제 추운 겨울이 지나가고 봄이 되면 저 눈 덮인 들판의 기러기떼들은 극동시베리아로 귀환하고, 나 또한 중앙아시아의 반 사막지대로 복귀한다. 나는 다시금 사람다운 사람들과 몇 달 동안 행복하게 지낼 것이다. 그동안 한국 사람들도 원모습을 많이 찾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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