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보원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교수
서보원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교수

2023년, 계묘년 새해가 밝았다. 검은 토끼의 해다. 토끼는 성질이 순하고 귀여우며 영리하고 지혜로운 동물로 알고 있다. 차분하며 꾀가 뛰어난 동물로 꼽힌다. 별주부전 설화에서 토끼는 ‘내 간을 뭍에 두고 왔다’는 기지를 발휘해 목숨을 건질 정도다. 계묘년의 상징인 검은색 역시 인간의 지혜를 뜻한다. 영특한 토끼의 특성과 지혜를 상징하는 검은색이 조화를 이뤄 어떠한 어려운 일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하며 좋은 일만 많이 생기는 한 해가 되길 마음속 깊이 새기고 새해를 맞는다. 

토끼가 위기에 대비해 굴을 세 개나 파 뒀다가 위기를 모면하듯 기업들은 조직을 통해 시너지를 키우고 집단지성의 지혜를 모아 미래의 불확실을 대비할 필요가 있다. 검은색은 모든 색을 흡수하는 특징이 있다. 흡수통합이다. 많은 이해관계자의 요구에 대응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조직의 존재 이유다. 집단지성의 문제 해결 능력이 그 한몫이다. 

ESG가 시대적 화두이고,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시대가 도래했으나 개별 기업의 셈법은 복잡하다. ESG 경영이 생존과 직결되는 기업의 경우에는 경영진이 높은 ESG 추진 의지를 보여 줄 것으로 짐작되지만, 이것을 여전히 선택의 문제로 인식하는 경영진에게는 어쩌면 ESG 경영이 기업을 옥죄는 새로운 걸림돌 정도로 여길 수 있다. 따라서 경영진은 ESG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스스로 깨닫고 내부 구성원들과 외부 이해관계자들에게 ESG 추진 의지를 공개적으로 천명해야 한다. 책임의식을 가지고 진정성 있는 ESG 경영을 이행할 최소한의 명분으로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짝이는 전부가 금이 아니듯, 명분이 좋다고 해서 모든 ESG 활동이 똑같이 좋게 평가될 수는 없다. ESG 활동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선한 일이니 적당히 해도 모두가 인정해 줄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환경적·사회적 책임에 관한 확고한 철학, 비전 등을 수립하고, 경영진뿐 아니라 전사적인 구성원 모두가 적극 동참하며 진정성 있게 환경과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나가는 방법을 모색해 나가야 한다. 그리고 ESG 경영이 실제 조직문화 코드로 내재화되지 않으면 기업으로서는 좋지 않은 평판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ESG 경영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의지 피력부터 조직문화로의 내재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구성원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해 보인다. 

ESG 경영은 최고경영진의 선언으로만 완성되지는 않는다. 환경적·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전문성이 있는 실무전문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SG 경영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가 ESG를 너무 쉽게 생각한다는 데 있다. 현재 실무자들은 ESG 항목을 정하고 달성을 위한 방법을 찾고자 한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종류와 특성을 이해하고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알아야 하고, 건전한 노동 관행을 만들기 위해서는 각 조직의 현 상태를 바르게 파악하고 개선안을 만들고 실천해야 한다. 그리고 지배구조 또한 대리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따라서 ESG 경영을 잘하려면 각 조직에 이러한 분야별 전문가가 필요하며, 이들이 공동 목표를 수립하고 협업해서 조직의 장기 목표를 달성할 필요가 있다.

ESG 실무자들은 먼저 연결기준 ESG DB를 구축해야 한다. GRI 2021을 비롯한 가이드라인들이 ‘연결기준 ESG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급망 ESG 확산을 본격화해야 한다. 이것 역시 모든 글로벌 가이드라인들의 요구사항이기도 하다. ESG 리스크의 대부분이 대기업 본사나 자체 공장이 아니라 공급사슬망에 존재한다는 평가분석이기 때문이다. 대기업만의 노력으로는 소용이 없다. 공급망 ESG 확산의 실체인 인권과 환경 실사가 실제 이뤄지려면 협력사들의 동의와 협력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SG 갑질이 되지 않고 진정한 지속가능한 공급망을 구축하기 위해선 공동 자원 투입을 비롯한 공급망 전체의 협력이 꼭 필요한 것이다. 

그 다음은 ESG에 관한 임직원들의 내재화이다. 지속가능경영의 필요성을 실무 부서들이 스스로 깨닫고 실행하지 않으면 ESG 담당자들은 속수무책이다. 실무 부서 협력 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리고 CEO가 ESG 실행에 대한 강력한 의지와 리더십을 발휘하게 하고,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실무교육을 진행하며, 성과평가에 ESG를 반영하는 것은 조직 입장에서 ESG 실무자들이 꼭 풀어야 할 과제다. 

올해 경제전망은 잿빛 일색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ESG에도 힘이 빠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위기는 언제나 기회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겠다. 특히 ESG와 관련해 과도했던 거품을 제거하고 내실화와 내재화를 위한 조직의 힘을 모아야 할 시기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