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시계추 하나가 있습니다. 정상적인 시계추는 끊임없이 좌우로 움직입니다. 만약 시계추가 멈춰 선다면 그 시계는 죽은 겁니다. 시계추가 정상이라면 쉬지 않고 움직여야만 합니다. 시계추는 왼쪽으로 올라간 만큼 오른쪽으로도 올라갑니다. 그러나 시계추가 어느 쪽에 있든 똑같은 시계추입니다. 다만 방향만 다를 뿐이지요. 이것이 시계추의 속성입니다. 우리의 삶도 같습니다. 삶이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계추의 속성과도 같다는 이치를 받아들이지 못하면 질시와 반목과 갈등을 불러일으켜 좋은 인간관계는 사라지게 됩니다. 마치 밀물과 썰물이 원래 하나의 바닷물임에도 불구하고 밀물은 썰물을, 썰물은 밀물을 비난하고 미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둘이 본래 하나라는 점을 깨닫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아침에 ‘출근하는’ 나와 저녁에 ‘퇴근하는’ 내가 사실은 똑같은 ‘나’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밉다며 손가락질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호승 시인은 자신의 책 「항아리」에서 밀물과 썰물을 빗대어 인간의 어리석음을 꾸짖고 있습니다. 썰물 때 아이들을 데리고 고기잡이하러 가자는 어느 부부의 대화를 듣고 난 후부터 밀물은 썰물을 미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 날, 밀물은 멀리서 사람들이 썰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썰물 때 갯벌에 그물을 치고 손으로 고기를 잡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봤으니까요.

 자신도 썰물처럼 사랑받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다가갔지만, 엄마들이 나타나 아이들을 데리고 갯벌을 빠져나가며 한마디씩 합니다. "왜 이렇게 밀물이 빨리 오는 거야? 아직 고기를 제대로 잡지도 못했는데."

 아이들이 "엄마, 언제 또 썰물이 되는 거야?"라고 하자 밀물은 실망합니다.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지만 정작 사람들은 자신을 싫어한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러자 썰물이 더더욱 미워집니다. 도대체 썰물이란 녀석의 정체를 알고 싶었습니다.

 어느 날, 절벽 위에 서 있는 노송에게 썰물에 대해 묻자 노송은 말해 줍니다. "내 말 잘 들어라. 밀물아, 네가 바로 썰물이란다. 밀물과 썰물은 일심동체야. 그런데 그걸 사람들이 편의상 그렇게 부를 뿐이지. 육지에서 바닷물이 멀리 물러나면 썰물이라고 하고, 가까이 다가오면 밀물이라고 말하는 거야. 이제 알겠느냐?"

 알겠다고 대답은 했지만, 노송의 설명을 온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밀물은 자신이 부둣가에서 멀리 수평선 쪽으로 물러나는 걸 느꼈습니다. 그리고 벅찬 목소리로 외칩니다. "아, 우리는 원래 하나였구나. 하나의 바닷물이었구나. 공연히 내가 썰물을 미워했구나."

 그렇습니다. 밀물과 썰물은 방향만 달랐지 원래 하나였습니다. 시계추가 왼쪽으로 가면 밀물이었고 오른쪽으로 가면 썰물이었던 겁니다.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죽을 듯했던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왼쪽에 놓인 시계추라면, 질투와 미움 때문에 눈물로 지새웠던 고통스러운 감정은 오른쪽에 놓인 시계추였던 겁니다. 밀물과 썰물처럼 사랑과 증오심 역시도 하나의 시계추였던 겁니다. 그를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미워했던 거니까요. 사랑했던 강도만큼 미워하는 감정도 거셌던 겁니다.

 이제는 알았습니다. 시계추가 어느 한쪽 끝에서 고정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좋아했다가도 어느 날은 미워지고, 또 미워졌다가도 언젠가는 애정으로 바뀔 테니까요. 이 이치를 받아들이면 힘들 때는 견디면 되고, 즐거울 때는 즐기면 되는 겁니다. 그게 시계추의 속성이자 삶의 속성입니다.

 이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생각의 범위를 밀물과 썰물 너머로 넓혀 봤습니다. 남자와 여자 모두가 똑같은 인간이고, 남편이나 아내 모두가 하나의 가족이며, 보수나 진보 모두 똑같은 선(善)함이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 똑같은 직장인이라고 생각의 지평을 넓혀 생각하면 지금까지의 싸움이나 분열이 얼마나 하찮고 얼마나 가소로운지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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