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기 KG패스원 교수
김준기 KG패스원 교수

세상은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을 뿐더러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지향하지도 않는다. 만일 아무 노력 없이 마음먹은 대로 삶이 영위되거나 그렇다고 믿는다면 누구라도 조만간 안일의 덫과 교만의 늪에 빠져 종래에는 힘들고 난처한 결과를 맞이하기 십상이다. 

비관은 슬퍼하거나 실망하는 감정 외에 인생은 괴로우며 악뿐이고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는 혐의를 견지하는 태도를 일컫는다. 하지만 인생이 고통뿐이라는 염세관은 그렇다고 쳐도 바랄 것이 없다는 태도는 배신에 직면하고 자괴감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기대 이상의 위안과 격려가 되기도 한다. 동일한 태도 같지만 형세의 어둡고 그늘진 면만 보는 것과 어떤 일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것은 별개의 태도로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희망은 경우에 따라서 자칫 깊은 좌절과 극단적 자책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희망이 크면 클수록 그것이 꺾인 뒤에 직면하는 낙심과 고통의 정도는 그만큼 치명적이다. 낙담은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실패로 돌아가면서 나타나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성과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의 훼절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더 강하다.

일을 진행시키면서 성공을 바라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집요한 애착과 과도한 집착은 일을 그르치게 하고 동시에 실패에 대한 심각한 불안에 직면하기도 한다. 비관적 태세와 일을 중도에 그만두는 행태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며, 또한 그래야만 한다. 성공에 대한 간헐적인 바람과 불완전한 확신은 실패에 대한 지속적 부담과 변칙적 불신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두려움은 성공을 제한하거나 방해하고, 포기를 부추기거나 수용하게 만들기 쉽다. 하지만 물러섬을 강요받지만 않는다면 그 비관은 비장함이나 과단성 있는 결기로 자신을 무장하고 실패에 대한 부담과 맞설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북돋울 수 있다.

막연한 희망도 멀리해야 하지만 준비 없는 낙관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 낙관을 통한 바라는 바의 성사(成事)는 희망을 통한 원하는 바의 성취보다 더 혹독하고 치열한 노력과 정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낙관이 불안감과 초조감을 일시적으로 제어하고 막는 진통제와 마취제라면 비관은 그것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고 제압하는 치료제와 백신제로 기능한다. 비관은 상대에게 패배하거나 목적 달성에 실패해도 좋다는 마음가짐으로 주어진 상황에 임하겠다는 각오와, 책임을 회피하거나 파국에 무너지지 않겠다는 의연한 다짐을 촉발시킨다.

이른바 ‘각오(覺悟)’는 본래 번뇌에서 벗어나 불교의 도리를 깨닫는 것을 의미하는데, 일반 중생이 받아들이기에는 어려운 행위다. 따라서 각오를 요구하는 비관도 그 상태를 유지하기가 그다지 용이하지 않지만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음은 분명하다.  복싱이나 격투기 시합에서 난폭하고 거친 상대의 공격을 견딜 수 있는 것도 오랜 연습과 훈련을 바탕으로 그 육체적 고통을 각오했기 때문이다. 살고자 하는 미련은 비극적 종말을 초래할 수 있지만 죽고자 하는 비장함은 원하는 바를 더 적극 도모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인생은 주지하다시피 본래 부조리하고 비상식적인 사태의 연속이고, 끊임없는 갈등과 망념으로 점철되는 번민의 시간이며, 피할 수 없는 생로병사가 예정된 한정된 여로다. 이 마당에 과도하게 긍정적인 인생관은 자칫 더 큰 후회와 환멸을 유발시킬 수 있다. 낙관과 절망은 동전의 양면이며 한몸처럼 작용한다. 그래서 이들의 충돌은 걷잡을 수 없는 심리적 혼란과 파행을 일으키고 물리적인 부작용과 결딴을 초래할 수 있다.

비관적 태도는 자신의 욕망을 줄여 성취의 가능성을 높이는 고도의 삶의 전략이다. 물론 성공을 위해 의도적으로 비관적 태도를 수단으로 삼아서 이를 이용해서는 안 되며, 그럴 수도 없어야 하지만 말이다.

어설픈 열정을 불안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한 오히려 그 열정은 목표 달성의 발목을 잡는 장애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성격이 아니라 습관인 담담한 비관이야말로 자신의 미래를 지키는 가장 냉철한 열정임을 한 해를 시작하며 되새겨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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