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계봉 시인
문계봉 시인

얼마 전 모 출판사에서 신간 시집을 내며 문단에 복귀한 한 원로 시인을 시민사회와 문인 상당수가 강하게 비판한다. 해당 시인은 몇 년 전 후배 여성 시인에게 미투 대상으로 지목된 후 한동안 칩거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도 자주 거론됐던 원로 시인에게는 치명적인 추문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지금까지도 "그의 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나 이렇게까지 마녀사냥하듯 소중한 문단의 자산을 매장해 버리는 건 아까운 일이다"라는 견해가 있긴 하지만, 그보다는 "피해자들의 일상이 안전해질 때까지 그의 죄는 잊힐 수 없다"는 의견이 훨씬 강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때나 지금이나 그는 한마디의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이제 미투는 물론이고 범죄 사실에 관한 사회적 인식도 많이 달라져서 대충 미봉(彌縫)하고 몇 년 있다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은근슬쩍 커뮤니티 속으로 복귀하려는 시도는 용인되지 않는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은 한 인물의 먼 과거는 물론 ‘사돈의 팔촌’의 범죄 사실까지 낱낱이 공개되는 그런 시대다. 방송에서 친근한 이미지와 재미있는 입담으로 인기를 끌던 탤런트 조모 씨는 수십 년 전 음주운전으로 30대 여성을 사망케 하고 도주한 사건이 뒤늦게 인터넷을 통해 알려져 방송에서 완전히 퇴출당했다. 현행 법률에는 공소시효가 있겠지만 웹서핑으로 찾아낼 수 있는 기록이 존재하는 한 대중들의 도덕적 질타에는 공소시효가 없는 세상이다. 

물론 대중들이 과거의 모든 범죄 사실을 용서하지 않는 건 아니다. 통렬하게 자기반성을 하거나 당시의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이었다거나 은밀한 선행을 지속해서 베풀어 온 것이 밝혀지면 기꺼이 ‘까방권’(비난을 면제받을 수 있는 권리, 즉 ‘까임 방지권’을 줄여 일컫는 인터넷 신조어)을 주기도 한다.

대중들이 가장 밥맛없어 하며 용서하지 않는 인물 유형은 반성하지 않는 뻔뻔한 인물들이다. 그러한 인물들이 양산되는 데에는 사실 ‘레 미제라블’의 장 발장처럼 상대적으로 가벼운 생계형 범죄에는 엄격하면서도 국가를 치명적으로 망가뜨리고 평범한 국민의 삶을 도탄에 빠뜨린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의 권력형 비리, 재벌의 편법, 탈법적인 이익 편취 행위에는 대책 없이 너그러운 현행 검찰과 사법부의 행태에도 책임이 있다. 정의감을 상실한 공권력이 부도덕한 인물들에게 한없이 너그러운 세상에서, 반성은 그저 돈 없고 뒷배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몫일 뿐이다. 

최근 시민들에게 ‘검찰 공화국의 간도 쓸개도 없는 권력의 개’로 전락했다는 오명을 듣는 검찰은 현재 한 야당 인사의 과거 비리를 캐기 위해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재판 전 피의사실 공표가 불법임을 알면서도 늘 그래왔듯 슬쩍슬쩍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작태는 저들의 ‘전가의 보도’가 된 지 이미 오래라 놀랍지도 않다. 만약 수사 대상인 인물이 명백한 불법을 저질렀다면 정당한 방법으로 치밀하게 수사해 처벌받게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짜맞추기 수사를 진행한다면, 이런 낡은 시대, 묵은 관행의 부작용은 그대로 검경과 사법부에 부메랑이 될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경찰, 검찰, 사법부의 반성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한편, 검찰의 낯익은 압박 수사에 여당은 성동격서하듯 "과거에 저지른 비리를 반성하지 않는 파렴치한 인물"이라며 해당 인사를 비난하고 있는데, 눈물겨운 유체 이탈 화법이 아닐 수 없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운운은 정말이지 삼류 코미디다. 과거는 물론 현재의 정치와 민생을 이 지경으로 파탄 낸 또 다른 주체들이 남 탓만 하며 반성을 운운하니 얼마나 웃기고도 서글픈 코미디란 말인가. 이처럼 우리는 진정한 반성이 부재한 시대를 살고 있다. 

광주항쟁의 단초를 제공한 당시의 대통령은 끝내 사과 한마디 없이 세상을 떠나 버렸다. 비리 국회의원들은 방탄복을 입고 잠깐의 비난 세례를 견디기만 하면 다시 또 그들을 선택해 주는 ‘지겹게도 일관된’ 착한 표심을 바탕으로 정치에 복귀한다. 재벌은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경기 회복, 경제 발전’을 위한다는 핑계로 마스크를 쓰고 휠체어를 타면 된다. 수백 명의 학생과 시민이 하루아침에 수중고혼이 되거나 도심 한복판에서 압사 당해도 책임 있는 인사들의 그 어떤 사과나 반성의 말 한마디가 없는 나라, 대통령은 실력 없고 관련 장관은 남 탓만 하는 그런 희한하고도 용감무쌍한 나라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 

물론 반성이 어디 ‘난 놈들’에게만 필요한 일이겠는가. 범인(凡人)인 우리에게도 반성은 필요하다. 하지만 소위 사회지도층이란 자들이 (제 살 깎아 먹는 거야 뭐라 할 말이 없으나) 여러모로 사회와 국민에게 무지막지한 해를 끼치니 그들의 반성을 우선 촉구할 수밖에…. 이들에게 증자(曾子)의 ‘일일삼성(一日三省)’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하루 한 번, 아니 열흘에 한 번이라도 자신을 돌아보고 제대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는데…. 에휴! 나도 안다. 그것이 얼마나 요원한 바람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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