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200년 전통의 영국 ‘콜린스’ 사전은 올해의 단어로 ‘영구적 위기:permacrisis’를 발표했다. 영구적 ‘permanent’라는 의미와 위기 ‘crisis’를 뜻한다. 모든 일에서, 특히 사업 영역 확장을 위한 기업·조직에서 외부와의 관계 자산, 협업을 통한 동반성장도 좋지만 신뢰에 가치를 더하는 내부적 믿음의 힘을 강화하는 것이 ‘영구적 위기’를 이겨 낼 기반이 된다고 예측하며 낸 단어라고 한다.

내외적 자리매김으로 "과거는 외부(外部), 미래는 내부(內部)"라는 단순 명제를 이해하는 것도 올해의 이 단어를 수용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리라 보인다.

하버드대 아마빌레 교수 역시 조직 구성원 간 내적 믿음이 긍정적 변화의 촉매제로 작용하고 기업 내 존중과 인정, 격려, 소속감, 유대감 등은 동기를 부여해 자발적으로 일의 의미를 찾는 데 ‘신의 한 수’가 돼 줄 것이라 했다.

날아다니는 새 이야기를 해 보자. 좋은 새란 결국 적게 먹고, 새끼 많이 낳고, 멀리 나는 새다. 사람 기준으로 본 평가다. 그렇다고 다른 평가지표도 없다.

넷플릭스에서 본 ‘트리즌’이라는 드라마에서 나온 대화인데 의미심장한 내용이었다.

요정꿀뚝새는 부화 전 포란 단계에서부터 특정음을 암호처럼 새끼에게 가르친다고 한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에게 먹이를 줄 때도 어미가 가르쳐 준 그 음을 그대로 내야 주고, 만일 다른 소리를 내면 바로 죽인다고 한다. 둥지를 차지한 뻐꾸기 새끼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더 의미 있는 대사는 "어미새는 그래서 더 열심히 자세하게 새끼 울음소리를 들어야 해. 안 그러면 자기 새끼를 뻐꾸기 새끼인 줄 알고 밀어낼 수 있으니까." 새끼가 소리를 내는 것보다 어미가 제대로 들으라는 얘기다.

어미에게 배운 암호 같은 소리를 내는 일은 새끼에게는 생존을 위한 필사적 작용이며, 어미는 먹이를 주기 전 수없이 많은 관심과 배려로 제대로 들어야 한다. 결국 상호작용, 즉 모든 작용에는 반(反)작용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 준다.

어느 조직이든 규모, 기능 불문하고 상호작용을 하는 관계 자산이 기반이다. 나, 너, 우리 그리고 외부, 이렇게 구분되면서 유기적 관계로 성장과 발전을 거듭하며 수익을 내고, 비영리의 경우 사회적 자본 축적에 힘쓰게 된다. 구성원이 많든 적든 관계의 상호작용은 그 조직의 상층부와 하층부를 잘 아우르는 절대적 힘이다. 상식과 원칙, 시스템 이 세 가지 조직 작동 원리는 상층부 리더의 힘도 중요하지만 가장 뜨거운 곳은 가장 아래에 있다는 사실도 반드시 여미어 생각해 볼 과제다.

ESG 경영의 내재화 요건 충족 시작점 역시 조직 구조 하층부에 대한 가장 뜨거운 곳의 격려와 당근이 중요하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층부 구성원들을 ‘자산’으로 생각하는 것과 ‘비용’으로 생각하는 것은 관점 자체가 전혀 다른 접근 방법이다. 생각 없는 자기 식구 감싸기나 끼리끼리 문화를 논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부적 가치를 높여 가는 길이 길게 보면 분명하게 이기는 길을 간다는 것이다.

은행 지점장, 지역본부장 시절 1천여 개 이상의 거래기업을 방문하고 업무협의를 하며 현장에 답이 있다는 소신 아래 조직 운영과 인력 관리를 유심히 관찰했다. 성과적 현황이 그 무엇보다 중요했지만, 그 못지않게 ‘사람’에 대한 ‘사람’을 보는 CEO의 시선이었다. 겉으로 드러내는 눈빛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매순간 비춰지는 인간에 대한 기본 의식이었다. 결국 그 자체가 경영이고 수익이고 관계이며, 사실상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상하간 균형 있는 상호 배려, 교감, 응원은 ‘신뢰’와 ‘가치’에서 나오며, 그 힘은 ‘내부의 힘’으로 증폭되면서 좋은 평판, 성장, 가치로 이어지게 된다. 결국 ‘내부의 힘’은 승자의 언어다. 구성원 한 사람이 보여 주는 선의의 진정한 가치는 외부에서 던져지는 지금 당장의 과실과 다르다.

필자의 경우 직원들에게 따뜻함보다는 엄격함을 더 많이 보여 줬고, 사무적으로 대한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많이 질책하고 엄하게 분위기를 몰아갔었다. 그렇더라도 보이지 않게 인격 모독이나 부당 대우는 절대 하지 않았고, 다른 영역과 외부에서 내 직원을 폄하·경시한다고 느껴지면 진심으로 감싸며 소중한 ‘우리 식구’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 주는 데 최선을 다했다. 마치 요정꿀뚝새 어미가 포란기 새끼들에게 가르친 특정의 암호 같은 그런 대응을 한 것이다.

내재화는 건강하게 일을 시키고 성과를 촉구하며 여러 경영 방편을 전략화해 조직을 이끌어 갈 수 있다. 다만, 새끼가 내는 소리를 잘못 알아 듣고 모독이나 부당 대우로 느끼게 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이는 신뢰가치가 아니다. 결국 자산이 아닌 비용으로 처리되면서 이용당한다는 인식은 내재화의 가장 큰 결손점이다. 내부 격려의 힘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는 일이 건강한 ESG 경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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