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온 평양 여자

 오혜선 / 더미라클 / 1만6천200원

이 책은 수기이면서 한 평양시민의 여정과 애환을 담은 편지다. 담백해서 더 처절하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치열했던 한 여성의 삶은 김일성부터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북한 사회의 사각지대를 비추는 작은 거울이 된다.

 ‘북한’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김정은, 핵무기, 독재, 가난…. 뉴스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들이지만 막연하고 멀기만 하다. 이 책은 그런 북한에 대한 관념의 추상화가 아닌, 그 속의 전경을 섬세하게 묘사한 풍경화다.

 저자는 생존자로서, 탈출에 성공한 사람으로서, 다시는 북한과 같은 나라가 지구상 다른 그 어느 곳에 세워지지 않도록, 앞으로 우리 자식들이 다시는 그런 지옥에서 살지 않도록 세상에 알리는 일이 자신의 의무라고 말한다. 그는 김일성 일가의 운명이 곧 나의 운명이라고 여겼다.

 김일성의 충신이었던 아버지의 그늘 아래 남들보다 안락하다 여겼던 삶, 신 같은 존재인 김일성에게 충성하는 일이 의리이자 도덕인 삶, 그게 평생의 운명인 줄 알았다. 하지만 유년 시절, 하루아침에 온 가족과 함께 사라지는 친구들을 보며 이제껏 누리던 안락함이 언제라도 사라질지 모르는 신기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곳의 삶은 힘의 높낮이와 상관없이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았다.

 아이를 살리자면 외국에 나가야 했다. 외교관인 남편과 함께 덴마크·스웨덴·영국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의료복지시스템을 체험한 뒤 북한의 반인민 실체가 뼈아프게 다가왔다. 힘든 시기마다 우리 가족이 기댈 곳은 조국이 아닌 외국의 복지제도였다.

 조국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믿고 싶었지만 조국이 아니라 독재자를 위한 노예의 삶이었다. 모두가 노예인 그곳으로 되돌아가야만 하는 상황에서 하느님만이 주는 기적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그 기회를 놓친다면 아이들은 두고두고 부모를 원망할 테다. 북한에 돌아가 다시 노예의 삶을 산다는 사실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스스로 노예 계약을 파기하는 그 선택의 무게는 감히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대한민국에서 받은 사랑과 믿음, 환대에 힘입어 한국사회에 잘 정착한다. 자유를 향한 저자의 꿈은 계속 진화한단다. 계속 꿈을 꾸는 사회, 노력만 하면 꿈을 이루는 사회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푸른 숨

오미경 / 특별한서재 / 1만2천600원

일제강점기 제주 하도리에 상군 해녀를 꿈꾸는 영등이라는 소녀가 있었다. 영등은 육지에서 돈을 버는 아버지를 대신해 상군 해녀 할머니와 함께 어린 세 동생을 키우며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작업을 나간 할머니가 사고로 물숨을 먹고 돌아가시자 남겨진 영등은 동생들을 책임지려고 해녀 일을 하며 살아간다. 당장 먹고사는 일에 급급해 공부를 꿈꾸지 못했던 영등은 어느 날 야학에서 강오규 선생님을 만나 글을 배우며 권리·의무·자유를 배우기 시작한다.

 일제의 수탈, 동료 해녀의 죽음, 동생들 뒷바라지, 매번 저승을 코앞에 둔 바다 물질, 영등에게 삶은 결코 녹록지 않았지만 하도리의 이웃이자 해녀 삼촌, 친구인 춘자, 연화, 옥순이 삼촌, 순덕이, 빌레 삼촌 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나아갔다. 일제강점기 제주 하도리를 배경으로 서로 연대하며 의지하며 거친 삶을 살아온 해녀들의 ‘아름다운 공존’을 그려 낸 이 책은 출간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 지원사업에 선정돼  문학성을 인정받은 청소년소설이다.

진중일지로 본 일본군 위안소

하종문 / 휴머니스트 / 3만1천500원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지금껏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난항을 겪는다.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위안부’ 모집과 위안소 운영에 직접 관여했다는 엄연한 사실조차 한일 양국의 극우 세력과 역사수정주의자들에 의해 부정되는 현실이다. 더구나 ‘위안부’ 문제는 한일관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데도 피해자의 존재와 증언을 빼면 한국이 자체로 발신하는 메시지는 빈약하다.

 이 책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고 ‘위안부’에서 ‘위안소’로 눈을 돌림으로써 일본은 물론 한국의 정부와 국민을 움직일 새로운 무기를 찾고, ‘위안부’ 문제를 한국이 주도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전기를 마련하고자 했다.

 ‘진중일지’라는 역사 증거로 위안소의 본질을 증명함으로써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새로운 이해와 접근법을 제시하는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물론 과거사에서 기인하는 한일관계의 극한 대립을 푸는 새로운 방안의 창출에도 이바지한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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