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김락기 전 한국시조문학진흥회 이사장

요즘 한국인의 문해력이 곧잘 사회적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문해력(文解力, Literacy)’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다. ‘심심한 사과, 익일, 사흘, 이지적, 사서, 이 모, 무운을 빈다’라는 말들이 본래 뜻과 달리 풀이돼 이야깃거리로 나돈다.

지난해 10월 어느 대학신문에 ‘청년층 문해력 저하 원인과 해결책’이 실렸다. 학생들은 독서량의 부족과 한자를 모르는 것이 원인이라 했다. 오죽하면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에서 ‘대학글쓰기’ 과목을 설정해 가르치나 싶다.

1940년대에 나온 이태준의 「문장강화」가 재출간되는 까닭이다.

나는 2021년 「한글과 한자의 아름다운 동행」이란 평설집을 펴낸 바 있다. 거기에서 어릴 때부터 한자를 영어처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한자’는 우리 조상 동이족이 만든 문자이므로 ‘漢字’가 아닌 ‘韓字’라고 썼다. 

오늘날 중국은 이 정자체 한자를 번자체라 해 멀리하고 획수를 줄여 만든 간자체를 쓰고 있다. 이와 달리 우리 민족은 모든 한자를 1자1음(一字一音)으로 말할 수 있다. 양글인 한글과 음글인 한자가 음양의 조화를 이룰 때 문자생활은 더 온전해진다.

우리말의 한자어 비율이 70% 정도인 만큼 한자 공부는 풍부한 어휘력 향상의 기본 방도다. 앞의 사례에서 ‘심심(甚深), 익일(翌日), 이지적(理智的), 사서(司書), 이 모(李某), 무운(武運)’들이 다 한자어다.

요즘 청장년층은 한자교육을 받지 못했다. 따라서 그들 문해력 저하의 주된 해결책은 독서라 할 수 있다. 많은 독서는 ‘사흘→네 날(나흘)’로 여기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문해력 저하의 보다 근본 해결책의 하나는 한자교육이라 하겠다.

한편, 사례 ‘이 모→이모(姨母), 무운→무운(無運)’으로 풀이한 정치권의 언어구사에 이르면 문해력을 말할 의미조차 없다. 악의적 편향의 이런 표현은 건전한 언어생활을 오염시킬 뿐이다.

이즘은 ‘중꺾마, 장꾸미, 열정페이, 프롭테크’ 등등의 용어처럼 줄임말, 외국어, 전문어가 마구 뒤섞여 넘쳐나는 신조어 양산 시대다. 이런 현상은 단지 독서나 한자교육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이쯤되면 문해력은 ‘글월의 맥락을 파악해 바르게 판별하는 능력’으로 풀이된다.

2013년과 2018년에는 OECD가 24개국을 대상으로 ‘국제성인역량조사’를 했다. 한국인의 전반적 역량은 상위권이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일부 식별 문항이나 55~65세 성인층의 언어 능력은 하위권이었다고 한다. 읽고 쓰기는 하나 이를 이해해 일상생활에 활용하는 수준이 미흡한 거란다. 급기야 글월의 맥락을 파악·판별하는 문해력 부족 현상은 청년층만이 아닌 한국인 전체의 문제요, 문해력 위기론까지 대두된다.

우리는 가장 배우기 쉬운 한글과 뜻깊은 한자를 함께 쓰고 있다. 이로 인해 문맹률이 극히 낮은데도 문해력 위기라니 아이러니하다. 한국인의 이른바 ‘빨리빨리 정신’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속도와 걸어다니는 스마트폰 즉통사회를 이뤘다. 이는 글을 쉬이 읽기는 하나 그 문맥을 깊이 이해하는 여유와는 맞지 않을 수 있다. 더구나 3년간 지속된 코로나 비대면 정국에다 디지털 기기와의 독단적 대물생활은 자기만의 확증편향적 생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문해력 위기는 곧 세대 간 언어 단절로 인한 의사불통사회로 이어진다. 우리나라는 반세기 만에 최빈국에서 세계 10대 선진국에 올랐다.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 시대와 3만5천 달러 시대에 태어난 사람이 함께 사는 나라다. 교육과 성장환경이 전혀 다른 세대가 공유하는 사회다. 세대별 세계 인식에 대한 가치관이나 인생관 차이도 그 불통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어쩌면 현대 한국인의 급변하는 첨단 생활 모습은 세계 시민이 뒤따라올 모델일지 모른다. 물질적 융합 산업사회와 정신적 개별 파편사회의 공존이라 할까. 문해력 위기의 해결책으로 어떤 국문학자는 ‘인문정신’을 든다.

인간관계에 기반한 상호 이해와 배려, 대동사회 홍익인간 정신이 되레 절실할 때다. 마침 올해 교육부는 성인 문해력 교육 지원예산으로 69억 원을 투입한단다. 세대 공감! ‘바른말 고운말’이 활짝 꽃피는 세상을 꿈꾼다. 문해력 소통의 시조창이 길게 울리는….

-세종의 한 생각-

종이책 전자책에
오디오북 다 접해도
 
가는 말이 고와야만
오는 말이 곱단 그 말
 
한길로
새겨 행함이
훈민하는 정음이라.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