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주는 것이 많아 행복한 세상」(조명연·정병덕 저)에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승객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륙 횡단을 하던 여객기가 기관 고장과 연료 부족으로 사막에 불시착했습니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습니다. 하나둘 밖으로 나오고, 조종사가 구조 요청을 보내려고 무전기를 두드리지만 아무런 회신도 없습니다. 가지고 있던 식량과 음료수를 아껴 먹으며 구조를 기다리면서 비행기 잔해를 기점으로 여러 명씩 조를 짜서 혹시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 마을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조별로 근처를 다니다가 어둑해질 무렵이 되면 비행기로 되돌아오곤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식량과 물이 바닥났습니다. 물이 없는 상황에서 살아날 가망은 없었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계속 사막을 여러 방향으로 뒤지고 다녔지만 헛수고였습니다.

어느 날 밤, 한 사람이 비장한 각오로 말했습니다.

"여러분, 여기서 이러고 있다간 결국 우리 모두 죽을 겁니다. 우리는 매일 밤마다 비행기로 다시 돌아오곤 하는데, 우리가 살려면 이 비행기를 없애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는 이 조난지점으로 돌아와선 안 됩니다. 이게 마지막 기회입니다. 여기서 떠나 다행히 인가를 발견하면 사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죽는 겁니다. 그러나 여기 이대로 있다간 모두 죽음뿐입니다."

다음 날, 비행기는 불에 타올랐습니다. 힘껏 손을 맞잡은 사람들은 서너 명씩 헤어져 길을 떠났습니다. 이제 그들이 돌아올 곳은 없습니다.

며칠 후,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사막을 헤매고 다니다가 드디어 오아시스가 있는 마을을 발견했습니다. 기쁨에 찬 사람들은 주민들이 주는 물로 목을 축이며 말합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과거와 연결된 줄을 과감히 끊어버릴 때라야 비로소 새로운 삶의 지평이 보인다는 그의 말이!"

성인 남성들은 으레 군대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은 과거 자신의 사업이 얼마나 번창했는지를 말하는 데 시간 가는 줄 모르며, 실연당한 사람은 사랑했던 시절에 파묻혀 슬픔과 절망감으로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과거에 묶여 있는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과거를 말하는 그 순간은 ‘지금’이 없습니다. 과거에 묶여 있는 한 오늘을 행복하게 지낼 수는 없습니다. 이 순간순간만을 살며 우리는 나이를 먹어 갑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해야 하는데도, 아픈 과거의 상처가 우리의 행복을 가로막고 있는 겁니다.

무료한 일상을 살다가 모처럼 축제 현장에 가 보면 설레고 감동적입니다. 그랬던 축제가 끝나면 왠지 허전하고 아쉬워집니다. 그러나 축제가 일 년 열두 달 계속된다면 그런 설렘과 감동이 있을 수 있을까요? 축제는 아쉽게도 사라져야 축제가 주는 맛을 즐길 수 있습니다.

「울지 말고 꽃을 보라」(정호승)에 짧은 우화가 나옵니다.

제주도에 핀 천리향과 만리향이 서로 자신의 향기가 멀리 간다고 다투고 있습니다. 바람이 지나가다가 그들의 말다툼을 보고 이렇게 말하며 떠났습니다. "향기가 멀리 간다고 해서 모두 아름다운 꽃은 아니야."

바람이 백두산까지 갔다가 다시 한라산으로 돌아왔지만, 아직도 다투고 있는 그들에게 다시 충고했습니다. "향기란 사라져야만 향기야. 무조건 멀리 간다고 해서 진정한 향기가 아니야. 향기란 살짝 스쳐 사라짐으로써 영원히 존재하는 거야. 향기가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한 곳에 머물면 그것은 냄새에 불과해."

매일 되돌아오곤 했던 비행기를 버렸을 때 비로소 오아시스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 내가 얼마나 잘나갔든, 얼마나 비참했든 상관없이 지금 내 자리에 열중하고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비행기를 버려야 합니다. 과거의 나를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이 순간, 지금 만나는 사람과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을 기꺼이 마주하고 웃을 수 있습니다. 이곳이 오아시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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