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강덕우 인천개항장연구소 대표

1876년 개항 이후 부산·원산 두 곳의 개항장에는 외국 상품이 쏟아져 들어왔지만, 관세를 담당하는 기구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른바 무관세 무역(無關稅貿易)이 강요돼 외국과의 통상에 상응하는 재정적 실익은 담보되지 못했다. 1881년 조선은 해관(海關, 세관)을 설립하고자 청국에 청국인 파견을 요청했으나 청국 최고의 실권자로 톈진에 있던 북양대신 이홍장(李鴻章)은 서양인 고문 고용을 권고했고, 그의 막료에서 업무를 수행하던 독일인 묄렌도르프(穆麟德)를 추천했다. 당시 묄렌도르프를 맞이하기 위해 현직 병조판서 조영하가 톈진으로 갔을 정도이니, 그에 대한 기대가 상당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조선 정부는 1883년 4월 24일 현재의 관세청에 해당하는 조선해관본부인 총해관(總海關)을 창설하고 독일인 묄렌도르프를 총세무사(관세청장)로 임명했다. 그리고 6월 16일 인천해관을 최초 개설해 관세 업무를 시작했다. 그는 이어 통리기무아문 협판(외교부 차관), 전환국 총판(중앙은행장)을 차례로 겸직함으로써 조선의 외교·통상·통화 정책을 사실상 독점하는 조선 최초의 서양인 고위공직자가 됐다. 그리고 그가 일으킨 사업은 인천의 세창양행이 대행했다. 전환국에 독일산 조폐 기계를 조달했고, 3명의 독일인 기술자도 초빙했다. 1884년 독일의 광물학자이자 지리학자였던 곳체(Gottsche)를 초청해 한반도 내륙을 조사하게 했다. 1885년 말 묄렌도르프가 실각한 이후에도 초빙 기술자 중 크라우스(Kraus)가 전환국 총판 자리를 물려받아 세창양행은 조선 정부를 상대로 한 사업에서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다.

세창양행은 묄렌도르프의 권유와 본사 함부르크로부터의 지원에 의해 1884년 6월 마이어(Meyer, 1841년생)와 볼터(Wolter, 1858년생)가 합작으로 인천에 설립한 마이어 상사의 현지 법인이었다. 이는 1882년 6월 30일 조선과 독일의 수교 이후 조선에 진출한 최초의 독일계 상사였다. 마이어는 주로 함부르크에 거주하면서 유럽-동아시아 무역을 총괄했고, 세창양행의 경영은 인천에 거주하는 볼터가 주로 담당했다. 1886년 3월 조선 정부는 마이어를 함부르크 주재 조선 총영사에 임명했는데, 그는 1889년 함부르크 산업박람회에 조선 물품을 출품하고, 1894년 함부르크 미술공예박물관에서 조선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정치·경제·문화 다방면에서 한국과 독일과의 교류를 이끌어 냈다.  

세창양행의 공동 사주 볼터는 서울과 인천에 막대한 토지를 소유했는데, 이로부터 ‘제물포의 왕’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경제력을 과시했다. 그는 고종과 가족처럼 지내는 사이로 수시로 궁궐에 초대돼 고종과 순종을 직접 만났다고 하며, 그의 둘째 딸은 순종과 소꿉친구였다고 한다. 1899년 독일 함대의 제독이었던 하인리히(Heinrich)황태자의 방한을 주선해 고종을 알현하게 했는데, 이 시기 최초이자 최고의 국빈 방문으로 기록되고 있다. 1900년 그는 한독 관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독일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았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함부르크에 설치됐던 한국영사관이 폐쇄됐고, 마이어는 1907년 볼터에게 세창양행의 전권을 위임함에 따라 세창양행을 단독 경영하게 됐다. 하지만 볼터는 건강이 나빠져 그 경영을 독일인 지배인에게 맡기고 1908년 독일로 귀국했다. 이때 이들의 귀국을 아쉬워하던 고종은 볼터 가족이 안전하게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장수와 상서로운 기운을 담은 ‘해상군선도(海上群仙圖)’라는 병풍을 선물했다.

동서양의 모든 외세가 제국주의적 침탈을 우선시 했던 시기에 그나마 조선은 세창양행을 통해 서구의 경제시스템을 이해할 수 있었고, 새로운 체제로의 전환을 경험하는 기회가 됐다. 그러나 무능한 국가 관리체계로 인해 위기를 극복해 기회로 삼는 데 실패했다. 더구나 1914년 일본의 대독(對獨) 선전 포고로 서울의 독일 총영사관이 폐쇄된 이후부터는 거의 명맥만 유지하다시피 했다. 개항 이후 독일과의 교류 140여 년의 역사적 사실들을 돌이켜보면서 인천과 독일의 ‘문화외교’에 의미 있는 결과가 오늘에 도출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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