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하는 우리나라 최초 근대식 실내 극장인 애관극장은 12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묵묵히 자리를 지킨 역사의 산 증인이다. 

인천시 중구에 자리잡은 애관극장은 1895년 인천 대부호 정치국 ‘협률사’라는 공연장을 설립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1911년 ‘축향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21년 소유자가 홍사헌 씨로 넘어가면서 ‘애관’으로 변경했다. 애관은 ‘보는 것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는 홍사헌 씨 마음이 담긴 이름이다.

애관극장 구조물은 1950년 한국전쟁 여파로 불에 타 1960년 다시 개관했다. 1972년 현 탁경란 대표 부친인 전 탁상덕 대표가 인수하고 1980년대 내부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모습을 갖췄다.

현재 애관극장 전경.
현재 애관극장 전경.

# 우리나라 최초 실내 극장

우리나라 최초 극장은 1902년 서울 정도에 세운 ‘협률사(協律社)’라고 알려졌다. 조선 황실이 고종 재위 40년 축하행사를 진행하려고 지은 건축물로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이후 연구와 조사를 거쳐 그보다 10년 앞선 1982년부터 극장이 운영 중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인부좌(仁富座)’는 일본이 만든 일본인 전용 영화극장으로 국내 최초 극장이지만 우리 극장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든 우리나라 최초 극장은 어디일까. 우리나라 최초 극장은 인천시 중구 ‘애관극장’이다. 애관극장은 1902년 고종 황실에서 서울 정동 야주현에 세운 개화기 대표 서양식 극장 ‘협률사’와 한글 이름은 같지만 7년이나 먼저 설립했다.

현대식 극장인 단성사보다 12년이나 앞서 세운 애관극장은 1911년 ‘협률사’에서 ‘축항사(築港舍)’로 이름을 바꾼 뒤 1921년 홍사헌이라는 지역 인사가 인수하면서 현재 이름을 갖게 됐다.

애관극장은 영화관과 연극장을 함께 일컬었는데, 이곳에서는 연주회와 강연도 열었다. 축항사에서 애관으로 바뀐 1920년 관람료는 가장 비싼 좌석이 1원, 가장 싼 좌석이 50전이었다고 한다. 1924년 기준 1원은 금 0.5돈쭝(1.875g), 지금으로 따지면 16만3천 원가량의 가치를 지닌다.

현재 애관극장 옛 모습.
현재 애관극장 옛 모습.

1927년 신축한 애관극장은 800명가량 수용 가능한 르네상스식 건축물이었다. 1930년에는 인천에서 처음으로 발성영화 ‘야구시대’를 상영했고, 1935년에는 연간 극장 입장객이 15만 명을 넘어섰다.

또 1940년 남조선 무용예술 콩쿠르와 올림픽 파견 레슬링 경인대시합 들을 열었고, 1948년 배우 최불암 씨 부친인 최철 건설영화사 대표가 제작한 영화 ‘수우’를 상영했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함포사격으로 반파됐지만 이후에도 극장 영업은 이어졌다. 1954년 건물을 신축하고 이듬해 피아노 거장인 ‘세이모어 번스타인’ 내한공연을 유치했다. 이후 1960년 신축한 뒤 400석 규모 극장으로 다시 개관했다.

# 사라질 위기에 처한 근대 역사

128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자리를 지키며 수많은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사한 애관극장은 코로나19 이후 경영난을 겪으며 존폐 위기까지 내몰렸다.

현재 대형 멀티플렉스 상영관과 경쟁이 치열한데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확대, 장기간 이어지는 코로나19, 원도심 쇠퇴에 따른 영화계 침체 따위로 손님을 모으기 어려워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현재 애관극장 옛 모습.
현재 애관극장 옛 모습.

그러나 애관극장 폐관을 막으려는 시민단체를 결성해 애관극장 지키기 운동에 나섰다. 애사모(애관을 사랑하는 모임)를 비롯한 시민단체가 생겼고, 이들은 저마다 방식으로 애관극장 매각을 막으려 노력한다. 시민단체는 애관극장이 사유물이 아니라 인천시민과 우리나라 역사문화유산이라며 애관 지키기 운동을 전개한다. 월 1회 영화 보기, 모금 같은 여러 방법으로 애관을 지키려고 애쓴다. 

애관 지키기 운동에는 봉준호 감독을 비롯해 배우 박정자 씨, 가수 한명숙 씨를 비롯한 여러 예술인이 참여한다. 또 윤기형 감독이 ‘보는 것을 사랑한다’는 다큐멘터리 작품을 내놓으며 애관극장이 현대사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 알렸다.

애사모는 예전에 인천도시공사가 건축가 김수근 씨가 설계한 중구 송학동 단독주택을 사들여 ‘이음 1977’로 다시 탄생하도록 한 사례와 같이 시와 시민이 활용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날 동인천역을 중심으로 극장 20여 개가 성업했다. 이들 극장은 사람들에게 여가생활과 추억을 선물했지만 시간이 흘러 하나둘씩 자취를 감췄고, 현재 남은 극장은 애관극장 단 한 곳뿐이다.

오늘날 한국 영화가 받는 영광은 역사의 모진 풍파와 난관을 이겨 내고 영화를 만든 예술인, 그 영화를 사랑한 국민과 극장이 합작한 성과다. 국제극장을 시작으로 서울극장까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극장들, 애관극장도 이 위험에서 예외는 아니기에 많은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

옛 정취가 묻어나는 1층 로비.
옛 정취가 묻어나는 1층 로비.

# 시간이 멈춘 공간

어린 시절 가족과 추억이 서린 장소. 사랑하는 이와 데이트 하는 장소. 친구와 만나는 장소. 이처럼 사람들마다 다가오는 의미는 제각각이지만 ‘극장’이라는 단어는 사전이 풀이한 뜻 말고도 온갖 사연을 버무렸다.

학창시절 친구들과 성인영화를 보려고 군복을 빌려 입고 들어갔다가 극장에 잠복(?)한 선생님에게 적발돼 얼차려를 받은 추억, 어린시절 부모님 손을 잡고 만화영화를 봤던 기억, 첫사랑과 데이트 코스…. 애관은 지난 추억과 이야기를 품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타임캡슐’이다. 긴 세월을 자랑하는 애관은 찾는 모든 이들에게 추억이자 빼앗기고 싶지 않은 공간이리라. 

한국전쟁 이후 불에 타 초창기 모습은 찾을 길이 없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애관’은 현재 모습이다. 애관극장은 수십 년째 변하지 않는 전통을 자랑한다.

10대와 20대들이 애관극장을 찾으면 마치 시간이 멈췄다는 느낌을 받을지 모른다. 영화와 드라마에서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세트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모습이어서 취재를 하려고 방문한 기자도 감탄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옛 정취가 묻어나는 무인매표소.
옛 정취가 묻어나는 무인매표소.

시대가 변하고 인건비가 오르면서 키오스크와 LED전광판은 설치했지만, 옛 모습을 상당히 간직한 채로 이용객을 맞는다. 마치 신혼부부처럼 다정하게 손 맞잡고 애관극장을 찾은 한 60대 노부부는 "우리 연애할 때랑 달라진 모습이 하나도 없네. 그때로 다시 돌아간 듯싶어 마음이 싱숭생숭하면서도 기분이 좋다"고 했다.

누군가에겐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던 박물관 같은 공간, 또 다른 이에게는 그 당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추억 공간 ‘애관’은 모든 이들에게 다른 의미지만 추억이라는 경험을 선사한다.

최근 국내 대형 영화극장이 생기면서 차츰 발길이 끊겨 위기를 겪는 애관이지만 근래 레트로 열풍과 소셜미디어 발달로 애관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진다.

# 가지 않을 이유가 없다

애관극장은 5개 상영관 860석 규모로, 건축 당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다. 지금은 14개 상영관에 4천 석이 넘는 대형 영화극장이 넘쳐나다 보니 매우 좁은 편이지만 말이다.

다만, 애관극장의 경쟁력은 규모가 아니라 건축물이 주는 경외감과 박물관에 직접 찾아가지 않는다면 보기 어려운 과거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내부 공간이다.

애관극장 영화 관람관.
애관극장 영화 관람관.

애관극장을 찾은 손님 대다수는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며 극찬한다. 마치 어릴 적 영화에서 보던 ‘백 투 더 퓨처’를 연상시키는 듯 말이다.

애관극장이 지닌 역사·사회 가치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해도 무방할 정도다. 시설이 오래됐다고 영화 감상에 문제가 될까. 4D 시청이 불가능할 뿐, 최신식 영사기와 디지털 음향 시스템을 갖춰 대형 영화극장과 같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역사·사회가치도 충분하지만 애관극장의 경쟁력은 값싼 관람료에서도 나온다. 올해 2월 기준 국내 대형 극장 관람료는 1만5천 원(성인 기준)인 데 견줘 애관극장은 일반 관람 8천 원, 조조 관람 5천 원으로 싸다. 또 온라인 예매와 통신사 맴버십 할인까지 적용해 더 싼값에 영화 관람이 가능하다. 가야 할 까닭은 차고 넘치지만, 가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다.

유지웅 인턴기자 yjy@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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