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우리에게 ‘형제의 나라’로 친숙하게 불린 튀르키예는 최근 대규모 지진으로 그 참혹상이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달돼 마음을 무겁게 한다. 멀리 역사를 되돌아보면 ‘고구려’와 ‘돌궐’ 이야기로 이어지며 ‘오스만 튀르크 제국’까지 귀에 익었다. 

‘겁쟁이’라는 영어식 터키(Turkey)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그들은 결국 2020년 ‘튀르키예(Turkiye)’라는 국가 표기를 표준화시켰다. 한국전쟁 때 미국,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병력을 파병했고, 2002년 월드컵 3-4위전 한국과 터키의 대결은 많은 터키 국민들을 울렸다고 전해진다. 실제 튀르키예를 여행하며 겪은 많은 현지인들의 호의적 반응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진 발생 72시간이 지나자 생존자 구출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안타까워하는 세계 방송사들의 보도가 줄을 이었다. 그러자 또 한편에서는 생존 기적을 바라는 ‘미라클 타임’이 거론된다. 한 사람의 생명이 아쉬운 그런 소망인 셈이다.

‘위기’와 ‘시간’의 관리 문제가 생생하게 전 지구적으로 조명되는 중인데, 이 주제는 단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국가, 사회, 조직, 가정, 개인 문제로까지 깊이 있게 다뤄질 문제라고 본다. 이 주제에서 자유로운 상황은 그 어느 것도 없다. ESG에서 논의되는 기후환경과 사회, 경영만 두고 이야기해도 이러한 위기와 시간문제는 끝없이 경영전략의 주제화가 되기 때문이다.

지구온난화로 북극 빙하가 녹아내리는 위기와 시간, 동토 해빙과 바이러스 출현, 글로벌 공급망 위기, 전쟁, 사회 갈등, 불확실성의 기업 경영 등 지구촌 모든 현상이 위기를 향해 달리고, 그 위기관리를 위한 여러 방안, 시간이 방대하고 깊이 있게 제시된다. ESG를 두고 자본시장의 논리이자 언어라고 해도 그 자체가 투자에 대한 위험관리가 되며 판단에 대한 책임을 시간 단위로 최적화시켜 관리 책임을 지는 일이다. 이에 더해 지속가능성을 제시하는 것이다.

위기관리, 시간관리가 경영전략 차원에서 교과서적으로 설명되고 세부 실천 방안, 기대효과까지 언급되는 동안 땅속 암석권에 있는 판(板·plate)은 벌써 움직였다. 위험은 아무리 예방, 예측, 대비를 해도 이렇듯 막상 닥치면 어느 정도, 어느 방향으로 언제까지 그 위기를 극복해 나갈까에 대해 정리해야 한다.

이미 닥치면 매뉴얼이나 텍스트를 가지고 설명할 상황은 아니다. 너무 다양하고, 뿌리 깊으며, 무궁한 방향이라는 점이다. 경영학 원론 관점에서 보면 4차산업, 인공지능 시대에 매뉴얼이나 텍스트는 위기 시 길을 찾기에 너무 좁고 제한적이다.

경영 사례 분석을 두고 논증을 제시하며 예측적 관리를 제안하는 건 그냥 교과서식 일반적 위기관리 수순일 뿐이다. 시대상황 자체가, 세상이 너무 달라진 것이다. 왜 단순한 이 문제를 죽음의 계곡(vally of death) 같은 강으로 생각하고 뛰어넘을 생각을 안 할까? 세계화에서 보호무역으로 회귀하고, 지정학적 자국우선주의가 팽배해 지구촌 곳곳이 전쟁과 위험으로 내몰려도 강자 논리로만 포장되고 이야기되고 있다. 위기와 시간의 관리 본질은 위험에 대한 인식 수준과 심리적 항상성(恒常性)에 기인한다.

ESG로 포장되거나 경영전략으로 돌려 막기해도 기업 경영은 현장이 되고, 현장은 위기와 극복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곳이다. 위기관리의 단골 메뉴 ‘하인리히 법칙’이 아니더라도 아주 작은 점에서 위험은 촉발되고, 그 위험은 보이지 않게 서서히 쌓여 가며 마침내 판을 뒤집는다. 그렇게 소리 없이 다가오는 것이다.

어느 조직이나 바로 이러한 시점에서 재정비하고 일부 수리하며 원형 보존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형식이 아니라 실제로 심각성을 부각시켜 도상훈련과 의식체계를 바로잡아 가야 한다. 역사가 오래돼서, 시장점유율이 높아서, 마니아층 형성으로, 선두 주자니까…. 그런 자만과 망상, 이완, 구태, 관행이 위기를 부르는 단초가 된다. 잘나갈 때일수록 일단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라는 의미가 바로 ESG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미라클 타임’으로 다가왔다고 생각한다.

▶일부수리(rehabilitization)는 어느 부분, 즉 일부만 수정·보완·개선해 나감으로써 보충적 혁신을 시도해 나가는 것이다. 시간과 비용, 인력을 고려하면 생존의 열쇠까지는 아니더라도 본질적 변화는 시도할 수 있다. ▶완전개조(rennovation)는 경영 전반에 관한 모든 절차, 성과, 전략 기획, 영업 등 가능한 범위에서 모든 부문의 개조가 이뤄져야 한다. 이 역시 시간, 비용, 인력을 감안하고 출발해야 한다.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달리다 가끔씩 멈춰 서 뒤를 보는 건 영혼이 뒤따라오지 못할까 염려해서 그렇단다. ESG경영은 지금 멈추고 돌아보라는 위기관리와 시간관리다. 지금이 기업 현장에서 가질 ‘미라클 타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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