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

이길보라 / 창비 / 1만4천400원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든 감독이자 작가 이길보라는 코다(CODA:Children of Deaf Adults), 즉 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 아이로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고요의 세계에서 자랐다. 사람들은 "부모님이 장애가 있어 어떡하냐"며 공감의 외피를 한 손쉬운 연민을 던졌고, 저자는 종종 당황했다. 

물론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인 가족으로 살아갈 때 수용과 포용보다는 차별과 거절을 더 자주 경험한다. 그러나 어려운 일만 있지는 않다. 모두의 인생이 그렇듯 화가 나고 속상할 때도 있고 기쁘고 가슴 벅찬 날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좋은 경험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유독 슬픈 이야기를 할 때 공감한다며 눈물을 흘리거나 연민의 혀를 찬다. 그 순간 삶은 대상이 된다. 자기 삶의 서사를 구축하는 주체성은 위협받는다.

암스테르담 젊은작가상, 한국장애인인권상을 수상한 촉망받는 젊은 작가 이길보라는 청각장애를 가진 부모 아래에서 자라며 고통이 부정의 뜻만 품지는 않다는 사실을 배웠다고 말한다. 신작 「고통에 공감한다는 착각」에서 그는 상실과 결여가 삶을 다른 방식으로 긍정하게 한다는 점을 보여 주는 논픽션 작품들을 소개하며 다른 사람의 고통에 어떻게 접근할지 탐구한다.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다른 사람의 삶을 단편으로 보지 않고 우리의 세계를 확장한다. 공감이 훼손된 시대에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당신은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입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다고 답하고 싶을 테다. 하지만 공감으로 충분할까? 더 나아가 공감이란 가능한가? 고통에 공감한다는 수사의 뒷면에는 고통은 불행한 일이며, 그 불행을 나눔으로써 다른 고통이 줄어들기를 바라는 선량한 소망이 담겼다. 그러나 고통을 불행으로만 받아들이는 시각에서는 고통에 대한 공감은 동정이나 시혜의 수준을 넘어서기 어렵다.

그럴 때마다 그가 ‘불쌍한 사람’이 아님을 알려 준 주체는 텔레비전과 책에서 접한 논픽션 작품들이었다. 반지하방에서 호떡 장사를 나간 부모를 기다리며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던 저자에게 좋은 작품들은 창문과도 같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그의 세계를 넓혀 준 작품들을 소개하고, 고통에 공감한다는 단순하고 납작한 착각을 넘어설 때 비로소 더 넓고 깊은 세계를 만난다고 말한다.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

조너선 카우프만 / 생각의힘 / 1만9천800원

이 책은 중국 근현대사의 중심에서 거대한 기업 제국을 형성했던 두 라이벌 가문 서순과 커두리의 숨겨진 100년을 복원한 논픽션이다.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 보스턴 글로브의 중국 담당 기자로 30년 가까이 일하며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던 조너선 카우프만은 치밀한 자료 조사와 수많은 인터뷰, 소설가와 같은 글 솜씨로 중국 근대화 과정에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서순과 커두리의 유산을 세상에 드러냈다.

이 책은 1차 아편전쟁이 끝난 1842년부터 1949년 공산당 집권까지, 중국 정부가 ‘치욕의 100년’으로 여기며 감추려 했던 이면의 역사를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출간 당시부터 유력 매체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저자의 끈질긴 추적은 중국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세계화의 거대한 맥락과 연결하며, 서순과 커두리의 발자취와 함께 격동하는 20세기 초 역사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두 가문의 선택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중국과 세계의 군사·외교 마찰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100년 전 그들이 겪었던 성장과 발전, 투쟁과 모순은 오늘날 국제 정세의 격랑에서 숨겨진 맥락을 읽어 내는 유용한 도구가 될 테다.

당신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벨 훅스 / 문학동네 / 1만4천400원

미국의 대표 페미니스트이자 사회운동가 벨 훅스가 쓴 이 책은 제대로 해소된 적 없으나 담론의 자리에서 사라져 버린 계급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그간 벨 훅스는 불평등과 인종차별 철폐, 젠더, 계급 착취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썼으나 계급 문제에 온전히 집중하기는 이 책이 유일하다. 노동계급 가정에서 자라 교육으로 계급 사다리를 타고 중산층으로 올라선 저자의 증언은 계급 문제의 안팎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계급 문제는 점점 악화한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표되는 부의 대물림, 그에 따른 주거·교육·건강 문제 따위 부익부빈익빈의 굴레에 우리는 갇혔지만 놀랍게도 이를 이야기하는 자는 드물다.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리 현실부터 제대로 직시해야 한다.

벨 훅스는 지금 우리 각자가 어떤 계급에 속하는지, 왜 계급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는지부터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지상주의와 부를 향한 욕망은 탐욕의 정치를 만들어 냈고, 계급 차별은 페미니즘 기반을 약화시켰다. 이러한 현실을 지적하는 한편, 빈곤층과 연대로 어떻게 하면 모두가 부와 풍요로움을 누리는 사회로 나아갈지 해법 또한 제시한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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