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연 홀트아동복지회 회장
이수연 홀트아동복지회 회장

아동 입양을 수행해 온 사회복지법인 홀트아동복지회는 요보호 아동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는 입양특례법 개정을 고대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난해 상반기부터 개정이 예고됐던 이 법은 올해로 넘어와 현재 2월이 지나도록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개정안에서 중요한 내용 중 하나는 해외 입양을 담당하는 주체가 입양기관이 아니라 국가기관인 아동권리보장원으로 변경된다는 것이다. 우리 기관은 이와 같은 공공성 강화를 중심으로 한 입양특례법을 환영하며, 후속 작업에 적극 협력할 것을 약속한다. 

1955년 전쟁이 끝난 후 부모 잃은 아동에게 가정을 찾아주기 위해 시작된 입양 업무는 68년의 세월이 지나는 동안 많은 부침을 겪었다. 비록 시대마다 입양 관련 법과 제도적 절차는 바뀌었을지언정 입양기관이 입양 대상 요보호 아동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만큼은 변하지 않은 채 긴 시간 이어져 왔다. 현 시점에도 입양기관으로 들어오는 아동들은 국가의 보호체계 밖에 있으며, 입양기관은 아무런 운영비 지원 없이 아동을 양육한다. 심지어 입양을 갈 수 없었던 중증장애아동 몇 명은 생계비, 장애수당 등 복지사회 국가의 어느 기본적인 혜택도 없이 온전히 입양기관의 책임 하에 청소년기에 도달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인생 성공 스토리에 소개되는 몇몇 입양인이 전체를 대표하지 않듯 불행한 인생을 겪었다는 입양인이 전체 입양역사를 대표하지는 않는다. 입양에는 기쁨과 행복도 있지만 상실과 슬픔도 공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당시 입양을 수행한 기관으로서 당사자의 슬픔에 공감하며 그들을 도울 길을 함께 찾고자 한다.

홀트아동복지회가 입양의 대가로 막대한 돈을 받았다거나, 입양 후 서비스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거나, 신분세탁의 불법을 자행했다는 등 근거 없이 쏟아지는 기사들은 많은 부분에서 사실과 다르지만 우리의 해명이 자칫 입양인과의 다툼으로 비춰질까 염려스러워 적극적인 대응을 자제해 왔다. 

하지만 점점 더 커진 의혹은 해외 입양인의 진실화해과거사위원회 국가권력 개입 조사 요청으로까지 이어지게 됐고, 지난해 11월 진실화해과거사위원회는 과거 입양에 어떤 부정이 개입됐는지를 조사하겠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조사 과정은 매우 힘드리라 예상되나 우리는 진심을 다해 이 과정에 응할 것이며, 그 당시 아동의 입양이 ‘사랑받고 살 수 있는 가정을 갖는 것’ 외 어떤 다른 이유도 있을 수 없었다는 것이 함께 규명되기를 바랄 뿐이다. 

더불어 입양 관련 정책에 대해 바라는 것은 객관적인 평가 작업이 진행돼야 한다는 점이다. 국내 입양은 사멸돼서는 안 될 요보호 아동을 위한 핵심적인 아동복지 체계이기 때문이다. 새 법과 체계가 실행되는 시점에서 이제 입양기관이 가졌던 노하우가 아동권리보장원으로 제대로 이식돼 국내 입양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또한 아동에 대한 명확한 유전적·후천적 정보가 입양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고 그에 맞는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현재 홀트가 보호하는 아동 중에 국내에서 가정이 정해지지 않은 아동은 약 20명으로, 각 아동별로 더 나은 미래 대책이 세워지길 바란다. 

일생 중 어느 한순간이라도 위기에 빠지면 전체 삶이 삐걱거릴 수 있다. 대다수 사회복지기관과 다르게 입양기관은 아동과 그 가족 전 생애에 대한 관심과 책무를 가질 수밖에 없다. 입양 후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정에게 입양이 종료된 수년 후라도 생계비, 의료비를 지원하는 것은 우리에게 드문 일이 아니다. 우리 기관은 이런 연장선 위에서 앞으로도 자신의 불행을 스스로 표현하지 못하는 더 어려운 처지의 아동을 위해 존재하고자 한다. 우리는 아동 한 명, 한 명을 대신해 그들과 함께 가고자 한다. 어려움을 겪는 아동이 없는 새 시대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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