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5일은 우리의 근대 역사에서 가장 처절했던 일제 36년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날이다. 일제 침략시기를 지내보지 못한 광복 후세대로서는 당시의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고뇌에 찼는지 알 수는 없다. 가끔은 간접 경험이라는 것을 통해 당시의 시대상을 상정해 보기는 하지만 그 실상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일제 식민 지배를 거치면서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식민사관이라는 것에 물들어 버렸다. 때문에 일제의 식민 지배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며 지내왔다.


미신으로 전락한 국가 제사

 
그리고 36년이라는 시간의 흐름은 참으로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 전통이나 민족적 자부심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하게 되었다. 철저하게 식민사관을 통해 우리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한 예로 우리는 성황제(城隍祭)라는 제사를 알고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성황제는 서낭당을 떠올리면서 미신의 하나로 치부해 버린다. 그런데 조선시대 제사체제에서 성황제는 중사(中祀)로 분류되는 중요한 제사였다. 국가 제사체제를 대·중·소사로 구분하는데, 그중에서 중사라는 것은 그 제사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성황제 문제는 학문적으로 입증을 해야하는 것이 많이 있다. 사실의 실체는 일단 차치하고라도 국가 제사가 어느날 갑자기 우리의 인식 속에서 미신으로 전락을 해버렸다. 그것이 미신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한 나라의 제사가 식민 지배를 통해 미신으로 전락을 했다는 것이고, 아무도 이에 대해 의아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식민 통치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이다.
 
광복 이후 공화국 체제가 성립되고 우리의 대통령들은 역사에 대해 무척이나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어떤 대통령이든지 그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역사를 바로 세우려고 무척이나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유신정권에서는 철저하게 역사를 이용해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우리의 현실에서 잘도 먹혀들었다. 단적인 예를 들어보면 정부에서 무엇인가를 잘못하거나 국민적 관심이 국가의 행태에 집중되면 다음날 어김없이 나오는 이야기는 간첩이 잡혔단다. 그래서 국민 관심은 간첩에 쏠리면서 정부의 과오는 유야무야로 지나가 버렸다. 또 어떤 대통령은 역사를 전봇대로 생각했는지 역사바로세우기 운동을 벌이기도 했고, 어떤 대통령은 일본 한 번 방문하더니 이제는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 역사왜곡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결과는 어떠했는가? 곧바로 일본에서는 검·인정 교과서 문제가 일어나면서 대통령의 말을 보기 좋게 뭉개버리지 않았는가!
 
현 정부에서도 이 문제는 이상한 논리로 풀어가고 있는 듯하다. 과거사는 청산하자고 하고, 일본 총리를 만나서는 과거의 일은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고 이게 무슨 논리인가?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본인의 재임기간 중 상대국가와의 관계에 있어 꺼림칙한 문제를 거론하지 않겠다는 것은 외교관계의 실리를 취하겠다는 긍정적인 모습으로 파악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지도자가 나서서 그렇게까지 면죄부를 줄 필요가 있을까?


역사의 평가는 다음세대 몫

 
전근대사회(前近代社會)도 아닌데 왜 우리의 대통령들은 역사를 자신들의 잣대로 멋대로 흔드는 것인가? 아니 전근대사회에서조차도 군주는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았다. 하다못해 임금과 신하가 독대(獨對)하는 것조차도 엄격하게 금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현재의 밀실정치와도 같은 것을 경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관들이 기록하는 사초는 살아있는 군주도 볼 수 없도록 되어있지 않았던가? 아무리 강한 절대적 힘을 가진 군주라도 제한이 주어졌던 것이다. 자신이 평가할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가 판단할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가능한 한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역사의 평가는 당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위치에서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고, 평가는 남아있는 자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 속담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이름 석자를 남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김상태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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