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태 섬마을선생님연구회 운영위원
이영태 섬마을선생님연구회 운영위원

대중이 즐겨 부르는 노래를 가요(歌謠)라 한다. 가(歌)라는 글자에 입을 크게 벌려 하품하는 모습(欠, 하품 흠)이 결부된 것도 ‘부르다’는 노래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하품을 할 수 있는 자라면 누구건 가요를 흥얼거릴 수 있다는 뜻이다. 노래하는 자들 중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업(業)으로 삼은 사람’을 가수(歌手)라고 지칭한다. 그들은 노래하는 행위를 직업으로 삼을 만큼 실력 또한 예사 사람들을 뛰어넘기 마련이다. 예컨대 타인과 변별되는 음색(音色)과 어조(語調), 특정 박자의 긴장과 이완을 조절하는 능력, 노랫말을 전달하는 능력을 갖춘 자라야 가수라 할 만하다. 생득적(生得的) 자질이 가수의 중요한 요건인 것이다.

가수들 중에서 자신이 작사·작곡한 노래를 직접 부르는 자들을 싱어송라이터라고 한다. 작사가, 작곡가, 가수라는 업을 동시에 수행하기에 이런 능력을 지닌 자들은 흔치 않다. 인천 출신 한정선(1960~2019년)이 이에 해당하는 뮤지션(musician)이다. 한정선은 1980년대 초 ‘솔개트리오’를 이끌며 젊은 음악을 부흥시킨 싱어송라이터다.

"오늘도 갈대밭에 저홀로 우는 새는 내 마음을 알았나 봐

쓸쓸한 바람에 아득히 밀려오는 또렷한 그 소리는 잃어버린

그 옛날에 행복이 젖어 있네 외로움에 지쳐 버린 내 마음을

어떻게 말로 다 하나요 난 몰라요 이 가슴에 아직도 못다 한 사랑

지난밤 꿈속에서 저홀로 우는 여인 내 마음을 알았나 봐

쓸쓸한 바람에 저만끔 밀려오는 또렷한 그 소리는 잃어버린

그 옛날에 행복이 젖어 있네 외로움에 지쳐 버린 내 마음을

어떻게 말로 다 하나요 난 싫어요 돌아와요 아직도 못다 한 사랑." <아직도 못다 한 사랑>

위 노래는 고려속요 ‘정과정곡’을 방불케 하는 설정이다.

‘내 님을 그리워해 울며 지내니/ 산 접동새와 난 비슷합니다/ 님께서 믿고 있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님이 벌써 나를 잊으셨습니까/ 아소 님아, 돌이켜 들으시어 사랑해 주소서’라는 옛날 노래에 등장하는 접동새와 오해로 인한 이별,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화자의 처지가 이에 해당한다.

다음의 노래에서도 고려속요의 대표적인 이별 정서가 오롯이 드러난다.

"바람에 취해 버린 꽃처럼 가로등 위에 있었죠

여인이여 내려지는 빗물을 어떻게 막으셨나요

어제는 밤거리에 홀로 선 그림자를 바라보았죠

여인이여 비에 젖은 창문을 왜 닫으셨나요

그댄 왜 긴긴 밤을 한번도 창가에서 기대 서 있는

모습이 내겐 보이지 않나 왜 잊으셨나요." <여인>

흔히 정인(情人)과의 이별을 눈물로 표현한다. 때마침 비라도 내려 눈물과 빗물이 섞이는 상황이라면 눈물은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흩뿌리게 마련이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화자는 정인의 집으로 향하며 연인들의 다정한 모습을 통해 자신의 외로운 그림자를 발견한다. 창문 너머에 어떠한 움직임도 발견할 수 없었던 화자는 소리 없는 메아리처럼 자신을 향해 ‘왜 잊으셨나요’를 되뇔 뿐이었다. 정인을 향한 화자의 이러한 소극적 심사 또한 고려속요에서 흔히 보이는 정서다.

인천 신흥동에서 나서 청소년기를 인천 중구에서 보낸 한정선은 정식 음악교육이라고는 단 한 차례도 받아 보지 못했다. 자작곡 수백 곡(미발표 100곡)이라는 숫자에서 알 수 있듯이 인천의 대표 싱어송라이터로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한정선이 솔개처럼 하늘을 향해 날아간 지 어언 3년이 지났다. 그가 배회하던 동인천역 주변과 신포동, 인천 바닷가 등 인천 공간이 그의 창작의 토양이었다. 우리는 그저 ‘난 몰라요 이 가슴에 아직도 못다 한 사랑’을 흥얼거리면서 높디 날던 솔개를 기억할 수 있어 다행일 뿐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