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자유로우면 행복할까? 자유란 무엇일까? 흔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행동한다면 사회는 무척 혼란스러워지겠지요. 그래서 서양에선 타인의 삶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자유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정말 행복할까?’라는 궁금증이 생깁니다.

「김광석, 부치지 않은 편지」(문제훈)에는 고인이 된 가수 김광석이 딸을 낳았을 때의 감회가 나옵니다. 의사는 아직 병원에 도착하지 않았고, 마침 간호사가 분만 준비를 하러 나간 사이에 아이가 나오는 바람에 얼떨결에 그가 아이를 직접 받아냈다고 합니다. 처음 보는 새 생명을 보며 무척 놀랍고 신비한 경험이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말입니다.

"아기를 받고 나서 놀라 멍하니 있다가 밖에 나가 보니 길거리의 사람들이 쉽게 보이질 않더군요. 잘생겼든 못생겼든, 가졌든 못 가졌든, 모두 똑같이 소중하고 고귀한 존재란 생각이 들어서 노래를 만들었어요. 우리 모두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야 하는 소중하고 고귀한 사람들이니까요."

딸아이 탄생을 통해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게 무척 인상적이고 놀랍습니다. 사실 자유와 행복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깊은 관계입니다. 자유가 구속됐을 때 행복은 있을 수 없으니까요.

자유를 누리고 살 때는 잘 모르겠지만, 영화 ‘빠삐용’의 주인공을 떠올려 보면 개인의 행복을 위해 자유가 얼마나 절박한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뒤주 속의 성자들」(김윤덕)에 이 영화의 후기가 실려 있습니다.

주인공 빠삐용이 감옥에서 탈출하다 잡히면 또 탈출하기를 반복하자, 함께 탈출을 기도한 동료와 함께 탈출을 시도조차 할 수 없는 바다 위 바위섬에 갇힙니다. 사방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섬 주변에는 급류와 와류가 있어 그냥 그곳에서 늙어 죽을 수밖에 없는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법정에 불려간 그가 심문을 받는 꿈을 꿉니다. 판사는 유죄를 선고하며 말합니다. "너는 중죄를 지었다. 그것은 네가 사회에서 강도짓을 하고 감방을 탈출한 게 아니다. 너의 진짜 죄는 바로 시간을 낭비한 죄, 인생을 낭비한 그것이다!"

잠에서 깬 그는 탈출계획을 세웁니다. 성공 확률은 없고 죽음만이 기다리는 탈출이었습니다. 함께 탈출하기로 한 동료마저 탈출을 포기하자 혼자 야자수 열매를 묶어 만든 튜브를 바다에 던져 놓고 이내 절벽에서 급류가 흐르는 바다로 몸을 날립니다.

저도 이 영화를 보면서 몸을 날리는 마지막 장면이 지금까지도 눈에 선합니다. 자유가 얼마나 소중했길래 죽음까지도 불사하며 몸을 날렸을까요? ‘인생을 낭비한 죄’를 씻기 위해서는 주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유익한 일을 해야 할 텐데, 그러려면 감옥에서 벗어나 자유가 있는 바깥세상으로 나가야 하지 않았을까요? 이렇게 생각을 이어가다 보면, 자유란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란 차원보다 한 차원 더 높은 개념이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고도원은 진정한 자유를 이렇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일상의 작은 일에 집중하고 자각하는 것, 다른 사람을 걱정하고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 그로부터 생겨나는 희생을 감수하는 것. 그것이 나를 자유로운 사람으로 만들고 내 주변의 다른 많은 사람도 자유롭게 해 준다."

이 말은 나의 자유로운 행위가 타인을 사랑하는 것으로까지 승화돼야 진정한 자유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에게 집중하게 돼 그에 관해 조금씩 더 자세히 알아가게 되고 배려하는 행동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때로는 그를 위해 희생까지도 감수하게 됩니다.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아이에게는 무한한 충족감으로, 어머니에게는 큰 기쁨으로 이어집니다. 이 상태가 바로 ‘진정한 자유’이고, 이럴 때 너와 나 모두의 행복의 문은 스르륵 열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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