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한참을 살고 나서 뒤돌아보면 인생이란 덧없다는 생각에 잠깁니다.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계획을 세우고 의지를 불태우며 무언가를 이루려고 발버둥쳤지만 그 끝은 늘 허무했고, 의지와는 전혀 다른 길로 걸어왔음을 알고는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한때 소중했던 것들」(이기주)에서 저자는 삶을 자전거 타는 것에 비유해 설명합니다.

"어린 시절에는 나이 먹는 일이 자전거 타는 법과 엇비슷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몇 번 넘어져 무릎이 까지고 멍이 들더라도 부지런히 삶의 페달을 밟으면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레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리라 믿었다. (…) 살면서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배운 교훈이 쉽게 잊히지 않듯이, 자전거 타는 법도 한번 배우고 나면 쉽게 잊히지 않는다. 자전거 타는 방법은, 마음은 잊어도 몸이 기억한다. 오랜만에 안장에 앉아도 페달에 발을 얹고 적당히 힘을 주기만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자전거를 밀고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믿고 살던 저자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는 생각이 이렇게 달라졌습니다.

"그래, 자전거 타는 건 정말 쉽지. 자전거는 시행착오와 신체적 고통을 어느 정도만 감수하면 쉽게 배울 수 있잖아. 하지만 먹고사는 일은 다르지. 아무리 많은 학습을 하고 수없이 넘어져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것 투성이잖아."

그렇습니다. 삶은 자전거 타기와는 다릅니다. 아무리 배우고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삶의 길목마다 만나게 되는 허무함이나 절망감 또는 배신감이나 분노가 좀처럼 사라지질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것들을 단칼에 없앨 수도 없습니다. 그게 삶이니까요. 삶은 이렇게 즐거움도 슬픔도 성공도 실패도 모두 안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삶의 이 질곡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이런 깨달음을 전합니다.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사회의 민낯을 알아간다고 해서 반드시 현실의 모든 게 익숙해지거나 나아지는 건 아니다. 팍팍한 현실을 감내하며 살아가는 일은 자전거 타는 일과 정반대의 속성을 지닌다. 그저 우리는 삶의 번민과 슬픔을 가슴에 적당히 절여 둔 채 살아온 날들을 추진력 삼아 꾸역꾸역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 각자의 리듬으로 끊임없이 삶의 페달을 밟아가면서. 넘어지지 않기 위해. 무너져 내리지 않기 위해."

삶의 얼굴이 기대와는 달리 번민과 슬픔과 아픔으로 점철되는 것이니 그냥 견뎌 내야 한다고 우리를 위로해 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살다 보면 살아지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 내가 세상이 요구하는 성공 방식을 따르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내가 아예 처음부터 잘못된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닌지 혼란스럽기도 합니다. 행복한 삶의 길에는 정답이 있기나 한 걸까요?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면 인생길을 걷는 발걸음이 훨씬 더 수월하고 경쾌할 텐데 말입니다.

정답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길이 아닙니다. 오로지 ‘내’가 가는 길이 정답입니다. 내가 살아온 길 또는 걸어가는 길이 바로 정답임을 깨닫기만 한다면 험난한 길조차도 발걸음은 무겁지 않을 겁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선문답」에 청담 스님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이 글에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외길이다. 비켜설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살아서는 무를 수 없고 죽어서도 끝나지 않는다. 간혹 행운이란 샛길이 나 있지만 끝내 저승길이다. 나침반이 쓸모없고 처자식은 짐만 되기 십상인 그 길은, 어쩌면 그래서 홀가분하고 또한 벅차다. 오직 나만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며 어떻게 가든 그게 정답이니까."

맞습니다. 홀로 가야만 하는 길이니 정해진 답 역시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가는 길을 정답으로 만들어 가야만 합니다. 그러니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는 것이 차라리 다행입니다. 만약 정답이 있어서 그렇게 산다면 사람이 아니라 로봇일 테니까요. 독자 여러분의 삶이 곧 정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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