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흥구 인천광역시사회서비스원장
황흥구 인천광역시사회서비스원장

‘도화역’을 통해 출근한 지도 벌써 넉 달째다. 실로 도화역 앞에 선 것은 14년 만이다. 인천 ‘논현역’에서 수인선을 타고 ‘인천역’에서 내려 다시 경인선으로 환승해 네 정거장만 지나면 도화역이다. 2009년 인천대학교에 근무할 때도 늘상 도화역에서 내려 출근했다. 달라진 것은 예전엔 4번출구로 나섰다면 지금은 1번출구를 통해 도화초등학교 방향 ‘테크노파크’ 건물에 있는 ‘인천시사회서비스원’으로 출근한다는 점이다. 그 전과는 정반대 방향이다.

며칠 전에는 예전 일이 새록새록 떠올라 4번출구를 나와 과거 근무했던 인천대학교 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쑥골고가교’가 끝나는 지점의 도화5거리까지 가는 단독주택 골목길은 변함없었지만 송림동 쪽으로 쭉 뻗은 8차로 도로는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가로막고 있어 4거리로 변했다. 왼쪽으로 돌아서 걸으니 ‘청운각’이라는 중국집과 ‘백령면옥’이라는 간판이 반갑게 맞아줬다. 

백령면옥은 예전 그 자리이나 청운각은 길 건너편 시장 가운데 있었는데 개발사업으로 헐리자 이곳으로 옮겨오지 않았나 싶다. 대학이 송도로 이전할 때까지 끝까지 버텨 있어 학생들이나 교직원들이 자주 들렀었다. 메밀냉면으로 유명한 백령면옥은 지금도 맛집으로 소문나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집이지만, 청운각의 짜장면과 탕수육은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아는 듯 가격은 저렴하고 가성비가 높아 항상 북적거렸다. 

학교 아래 조그만 시장터는 지금 ‘인천시상수도사업본부’와 ‘정부 인천지방합동청사’ 등 행정타운이 자리잡았다. 상수도본부 옆길로 들어서 올라가니 당시 대학도서관은 평생교육원으로 간판을 바꿔 달고, 대학본부가 있던 본관은 ‘청운대학교’ 인천캠퍼스가 주인 행세를 하고 있었다. 운동장 쪽으로는 아직도 대학원 건물과 인천대 제물포캠퍼스가 일부 남아 있긴 하지만 오른편으로 옛 선인체육관과 이공대, 인천전문대학이 있던 부지는 2009년 8월 학교가 송도로 이전한 후 ‘도화도시개발사업’으로 지정돼 지금은 고층 아파트 단지가 점령해 버렸다. 

예전 근무하던 본관 앞에 서니 불현듯 대학 사무처장으로 근무할 때가 생각났다. 발령 받던 2009년 한 해는 시립대학에서 국립대학 법인으로 전환되는 시기였으며, 전문대학은 대학으로 통폐합되고 대학은 도화동에서 송도로 이전이 확정됐었다. 1월 발령받은 날부터 학교는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법인화를 반대하는 극렬 학생들은 총장실을 무단 점거하고, 전문대는 전문대대로 통합을 반대하는 시위가 졸업생까지 합세해 교정은 온통 대자보와 현수막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런 가운데도 학교 이전은 안 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이전 비용만 무려 200여억 원이 책정돼 있었다. 고가의 실습장비를 제외하고 모든 집기와 책상, 컴퓨터, 구내식당 그릇까지 전부 새것으로 교체하기로 했다. 

이사에 대한 모든 책임은 사무처장의 소관이었다. 이사도 하기 전 여기저기서 청탁이 밀려들어 왔다.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에서 지역 생산 가구를 우선 구매해야 된다느니, 특수 물품은 수의계약으로 해야 하느니, 별별 이유를 들어 압박했다. 그러나 조달구매를 원칙으로 품목 하나하나를 일일이 협의해 조달청에 일괄 구매, 차질 없이 이전을 마친 것은 욕은 실컷 먹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이후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인천대가 송도경제자유구역으로 이전해 국립대 법인으로 전환한 후 동북아 중심 대학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소식에 당시 관계했던 당사자로서 자부심을 느낀다.

14년이 지난 지금 나에게는 또 다른 사명이 주어졌다. ‘인천시사회서비스원’은 인천의 사회복지를 실천하는 중추기관이다. 음지에서 복지 혜택을 못 받고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는 이웃들에게 희망이 되고 등대 구실을 하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교정을 한 바퀴 돌아 나와 다시 도화역 앞에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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