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1908년 미국 여성 노동자들이 생존권과 참정권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를 기념해 1975년부터 UN이 지정했다.

수원에도 자랑스러운 역사 속 여성들이 있다. 수원의 명예를 드높인 공적으로 귀감이 된 인물을 선정해 조명하는 ‘수원시 명예의 전당’에 헌액한 김향화(1897~미상), 안점순(1928~2018), 이선경(1902~1921)이 주인공이다. 어두운 시대 상황과 여성의 한계를 딛고 수원을 넘어 대한민국을 빛낸 이들의 삶을 기억하자.

수원예기조합 만세운동 지도자 기생 김향화.
수원예기조합 만세운동 지도자 기생 김향화.

# 총칼 앞에서도 의로웠던 기생 김향화

김향화는 일제강점기 매서운 총칼 앞에 의롭게 맞선 수원 기생이다.

1897년 7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난 김향화의 본명은 순이다. 생계가 어려워 불과 15~16세 때 나이 차이가 많은 남편과 결혼했지만 18세가 되던 해에 이혼했다. 비슷한 시기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생계가 어려워진 가족들이 수원으로 이주하면서 김향화는 가족을 부양하려고 기생이 됐다. 1918년 발행한 ‘조선미인보감’은 김향화가 검무와 승무에 능하고, 구슬프고 애절하게 노래를 잘한다고 소개했다.

당시 수원 기생들은 의기가 높았다. 1월 21일 고종 황제가 승하하자 27일 수원 기생 20여 명이 상복을 차려입고 서울 대한문 앞으로 가 망곡례를 올린 일을 매일신보가 기록할 정도다. 또 자선공연으로 생긴 수익금을 수원상업강습소 학생들을 위해 내놓는가 하면 높은 민족의식으로 제구실을 다했다.

더구나 1919년 3월 들불처럼 번졌던 수원지역 만세운동 중 김향화를 중심으로 한 수원예기조합 기생들은 일제 총칼에 용감하게 맞섰다.

3월 29일 자혜의원(화성행궁 봉수당)으로 검사를 받으러 가던 기생 30여 명이 경찰서 앞에서 태극기를 꺼내 들고 만세를 외쳤다. 선두에는 김향화가 있었다. 일본 경찰과 수비대가 총칼을 들이대며 무자비하게 진압했고, 이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합세해 시위 규모가 커졌다고 한다. 김향화는 경찰에 잡혀 주모자로 지목됐다.

이후 김향화는 2개월여 동안 감금과 고문 끝에 징역 6월 판정을 받았다. 만세운동을 주도한 기생 김향화 재판에는 많은 사람들이 방청객으로 참석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1919년 10월 가출옥한 김향화는 수원으로 돌아왔다. 이름을 ‘우순’이라고 바꾸고 지내다가 서울로 이주했다는 사실 말고는 이후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가난 탓에 기생이 됐지만 조국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을 주도한 김향화에게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수원시가 공훈을 발굴해 서훈 신청을 이끌었고, 표창장과 메달은 수원박물관 수원 독립운동가 코너에 전시해 시민들에게 드높은 의기를 전한다.

일제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활동가 안점순 할머니.
일제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활동가 안점순 할머니.

# 고통을 딛고 평화를 만든 안점순

안점순은 끔찍했던 위안부 피해를 세상에 널리 알리며 수원시민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감동을 선사한 평화활동가다.

1928년 12월 2일 서울에서 태어난 안점순은 어려운 가정 형편에도 효심이 깊은 소녀로 자랐다. ‘방앗간 앞으로 모이라’는 말에 저울에 올라섰던 열네 살, 트럭에 그대로 실려 어머니와 생이별했다. 어딘지도 모를 사막 같은 곳에 끌려가 고통스러운 생활과 짐승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3년을 버텼다. 전쟁이 끝나자 버려진 안점순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광복군 도움을 받아 집으로 돌아갔다.

석 달을 앓아 누운 안점순은 또다시 전쟁을 겪으며 피난생활을 하는가 하면 고된 삶을 이어갔다. 결혼은 하지 않았고, 1991년 위안부 문제가 세상에 공개된 뒤 조카가 피해자로 등록만 했을 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지냈다. 그러나 피해자 지원단체가 끊임없이 문을 두드린 끝에 할머니가 된 75세 안점순은 세상으로 나와 날갯짓을 시작했다.

일본대사관 앞 수요시위에 참석하고, UN 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해 일본의 만행을 알리고, 국제노동기구 심포지엄에 참여하고, 다른 피해자들과 연대하는 활동으로 전쟁 피해를 낱낱이 세상에 알렸다.

안점순 활동은 수원지역에서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활동의 밑거름이자 원동력이 됐다. 시민들이 스스로 건립기금 7천여만 원을 모아 2014년 시청 맞은편 올림픽공원에 평화비를 세웠다. 또 이를 계기로 수원평화나비를 창립해 수원시와 자매도시인 독일 프라이부르크시에 유럽 최초 평화비를 세우려 했으나 일본이 조직을 갖춰 방해하는 통에 안개처럼 사라졌다.

안점순과 수원시민의 끈질긴 노력은 2017년 3월 독일 레겐스부르크 인근 네팔 히말라야 파비용 공원에 ‘순이’라는 이름의 소녀상을 세우는 결실을 맺었다. 89세 노인이 된 안점순은 제막식에 참석해 "험한 세상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후 1년여 만인 2018년 3월 30일 고단했지만 아름다운 삶을 마감했다.

수원시는 고통을 딛고 평화운동가로 거듭난 수원의 자랑스러운 여성 안점순을 수원시민사회장으로 배웅하고, 명예의 전당에 수원을 빛낸 인물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또 수원시가족여성회관 안에 ‘용담 안점순 기억의 방’을 만들어 그의 활동을 기억하고 추모한다.

수원의 유관순으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이선경 열사 상상도.
수원의 유관순으로 알려진 독립운동가 이선경 열사 상상도.

# 독립 위해 불태운 열아홉 열정 이선경

‘수원의 유관순’으로 알려진 이선경은 꽃다운 19살에 순국한 수원지역 여성 독립운동가다.

이선경은 1902년 5월 수원군 산루리(현 수원시 중동) 유복한 가정에서 2남 2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1918년 수원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숙명여학교로 진학해 1919년 3월 만세시위에 참여해 구속됐다가 무죄 방면됐다.

게다가 수원지역에서 김세환의 시위 계획에 참여한 이선경은 각지의 연락 업무를 담당했다고 알려졌다. 치마폭에 비밀문서를 숨기고 일본 경찰 눈을 피해 대전·청주·안성, 그 밖의 지역으로 수십 차례 비밀지령을 전달했다고 한다.

이후 2학기에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로 전학한 뒤 수원에서 서울로 유학하던 여성 동지들과 나라의 장래를 위해 자신들이 할 만한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선경은 1920년 6월 서호 부근에서 박선태 들과 만나 수원 최초 비밀결사체 ‘구국민단’을 결성하고 임원으로 활동했다.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로 통학하는 지식인 청년들이 주축이 돼 매주 금요일마다 삼일여학교(현 매향중)에서 만나 독립운동과 임시정부 활동을 알리는 내용을 수원지역에 배포하는 논의를 했다.

더구나 이선경을 비롯한 여학생들은 임시정부 간호원이 돼 독립운동을 돕겠다는 맹세를 했다. 그러나 두 달여 만에 구국민단 활동이 발각돼 이선경도 체포됐다.

이선경은 체포된 뒤 일제 경찰에 심한 고문을 받았다고 추정된다. 1921년 4월까지 140일간 구류됐는데, 이 기간 병을 얻어 재판에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 재판일이었던 1921년 4월 12일 궐석재판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방면된 이선경은 수원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온 지 9일 만인 4월 21일 순국했다. 병원에 가지 못할 정도로 병세가 심각했다고 한다.

이선경은 심문 과정에서도 독립을 향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석방된다면 다시 이 운동을 벌일 생각인지 묻는 일제에 "석방돼도 다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우겠소"라고 답한 기록이 있다. 이선경은 순국 91년 만인 2012년 3월 1일 건국포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수원시는 명예의 전당에 그 자랑스러운 수원 여성 이선경을 헌액해 기억한다.

수원시는 세계 여성의 날 115주년을 맞아 10일까지 여성문화공간 휴에서 국립여성사전시관 순회전을 연다.
수원시는 세계 여성의 날 115주년을 맞아 10일까지 여성문화공간 휴에서 국립여성사전시관 순회전을 연다.

# 수원에서 만나는 세계 여성의 날

수원시는 세계 여성의 날 115주년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연계 전시를 마련해 눈길을 끈다. 오는 10일까지 여성문화공간 휴 로비와 계단에서 진행하는 특별 프로그램 ‘2023 국립여성사전시관 순회전’이다. 역사 속 여성 인물과 한국 최초 여성인권선언문인 여권통문 가치와 의미를 알려 주는 내용이다.

수원 출신 서양화가이자 작가인 나혜석(1896~1948), 대한민국 최초 여성 변호사이자 여성운동가인 이태영(1914~1998), 비행사이자 독립운동가인 권기옥(1901~1988),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 최은희(1904~1984)를 비롯해 우리나라 근현대 역사 속 여성 10여 명의 활약상을 확인하기에 제격이다.

또 1898년 발표해 우리나라 여성운동 효시라고 할 만한 여권통문에 대한 설명과 여성운동 발전사를 간략하게 보여 주는 내용도 포함해 눈여겨봄 직하다.

시민 누구나 참여하는 이벤트도 있다. 수원시 가족여성회관이 마련한 ‘나부터 돌봄 챌린지 #소중한 나를 안아주세요’다. 11일까지 ‘나’를 안아주는 사진을 홈페이지나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게시하는 방식으로 참여하면 된다.

오프라인으로는 8일 가족여성회관 교육관 1층 로비에서 세계 여성의 날 역사와 의미를 알려 주는 전시와 응원 메시지 게시, 챌린지 참여자 사진 전시를 진행한다.

시 관계자는 "수원시는 여성인권을 위한 다양한 사업과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며 "차별 없이 성평등한 수원시가 되게끔 세계 여성의 날에 관심을 가져 달라"고 했다. 

안경환 기자 jing@kihoilbo.co.kr

사진=<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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