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어울림아카데미협동조합 이사장
박진호 어울림아카데미협동조합 이사장

매년 3월 8일은 유엔이 지정한 국제기념일인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이날을 상징하는 구호가 된 것이 ‘빵과 장미’입니다. 빵은 ‘생존’, 장미는 ‘인권’을 의미합니다.

오래전인 1999년 문화방송의 주말 드라마로 ‘장미와 콩나물’이 있었습니다. 장미처럼 아름답고 싱싱한 아가씨에서 결혼 후 집안일에 시달리며 콩나물 무침처럼 변해 가는 우리네 주부들을 그린 드라마로 소개됐습니다. 완전 보수적인 남편과 그 속에서 갈등하고 힘들어하는 엄마 그리고 네 아들과 며느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화해를 이어 나갑니다. 전원일기로 이 시대 어머니로 인식되는 김혜자 씨가 엄마 역을 맡아 연기대상을 수상했습니다. 

내용 자체는 특별한 점이 없지만 인간미 있는 캐릭터 묘사로 호평을 받았고, 시청률도 좋았습니다. 드라마 마지막 장면에서 엄마의 생일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자식들에게 남편이 꾸지람을 합니다. 그러자 남편에게 엄마 생일도 기억을 못하는 건 ‘당신도 똑같다’라고 했던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벌로 닭장 안에 가두겠다고 하는 코믹한 상황이 기억납니다. 생존의 빵과 인권의 장미 또는 장미에서 콩나물로 변해 가는 과정, 어느 것이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엄마, 어머니의 얘기입니다.

빵과 장미란 단어를 사용했던 어원이 무엇일까요?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비인간적인 노동에 시달리던 섬유산업 여성 노동자에서 시작됐습니다. ‘생계를 위해 일할 권리(빵)를 원하지만 인간답게 살 권리(장미) 또한 포기할 수 없다.’ 여성 노동자 1만5천 명이 10시간 노동제, 임금 인상,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면서 지금의 의미를 담게 됐습니다.

여성 노동자가 직접적으로 ‘빵과 장미’라는 구호를 사용한 건 1912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로렌스 직물 공장에서입니다. 당시 파업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우리는 빵을 원한다, 그리고 장미도 원한다’는 팻말을 활용햇습니다. 로렌스 파업은 ‘빵과 장미 파업’이라고 불립니다.

또한 빵과 장미는 미국 시인 제임스 오펜하임이 여성 노동운동가를 위해 쓴 시 구절 "몸과 함께 마음도 굶주린다네. 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러나 장미도 달라"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졌습니다. ‘빵과 장미’라는 말이 널리 알려진 이유는 2002년 제작한 켄 로치 감독의 불법 취업 이민자들의 척박한 삶을 다룬 영화 ‘빵과 장미’입니다.

의왕시 한 단체에서 출생 장려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관련된 교육을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출생아 수가 80개월 연속 감소하며 내국인 인구는 2019년 11월 이후 33개월 연속 자연 감소가 이어지는 중입니다. 저출산과 함께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사망자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출생아가 줄고 사망자는 늘면서 전체 인구가 감소하는 것입니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으리라 예상되는 출생아 수가 합계출산율인데 0.78명대로 매우 낮은 상황입니다.

출생아 감소의 일차 원인은 결혼하는 사람이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혼인 건수는 2012년부터 매해 줄었습니다. 집값, 일자리 등 경제문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으면서 청년이 결혼을 피하고 출산을 미뤘기 때문입니다. 이혼율이 낮아진다는 보고가 있는데, 이는 혼인 자체가 줄면서 생기는 일입니다.

전문가의 아이디어와 많은 예산을 사용하고 쏟아부었지만 출산율은 상승도 아니고 유지도 아닌 하향 곡선을 그리며 인구절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정부의 주거 부담, 출산·육아 부담, 교육 부담, 일·가정 양립 등 5대 저출산 요인의 해결이 선행돼야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하게 바라봐야 할 점은 엄마의 생일을 기억 못하는 자식들에게 남편이 꾸지람을 하자 ‘당신도 똑같다’는 말을 들으며 벌로 닭장 안에 가둬지지 않을 의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가정에서, 사회에서 생계를 위해 일할 빵을 원하지만 인간답게 살 장미 또한 포기할 수 없다고 외치는 그들은 우리의 소중한 이 시대의 어머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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