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수찬 인천중구문화재단 영종역사관장
견수찬 인천중구문화재단 영종역사관장

2020년 5월 22일 문화재청은 계양산성을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제556호)로 지정했다.

계양산성은 계양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작은 봉우리 주변에 축조된 둘레 1천184m, 면적 6만2천863㎡ 규모의 석축성으로, 문학산성과 더불어 인천의 고대문화를 상징하는 유적이다.

그러나 조선 중기 성이 폐지된 후 성벽 등 구조물이 점차 붕괴돼 옛 모습을 잃었고, 급기야 일제강점기에는 성 내부가 공동묘지로 사용되면서 인위적 훼손이 광범위하게 진행됐다.

1990년대에 이르러 더 이상의 유적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인천시에서 기념물 제10호로 지정하고 역사적·문화재적 가치를 확인해 유적 정비를 추진하려 했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 부족으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문헌 기록을 통해서는 계양산성이 삼국시대에 축조돼 오랫동안 사용됐고, 16세기 무렵 폐성됐다는 기본 사실만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양산성에 대한 기록 중 가장 시기가 앞서는 것은 1530년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으로, 돌로 쌓은 성이고 규모는 둘레 1천937척이며 당시에 이미 허물어져 ‘고성(古城)’으로 지칭되던 상황을 간략히 소개했다. 이후 기록들도 거의 동일한 내용을 전하는데, 「동국여지지」(17세기)와 「증보문헌비고」(20세기 초)에만 "삼국시대에 쌓았다"는 성의 연혁이 추가됐다.

이렇게 문헌 기록만으로는 축조 시기와 주체, 축조 배경·기능 등 유적의 가치와 성격을 파악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유적에 대한 지표조사와 발굴조사가 여러 차례 시행됐다.

1997년 첫 지표조사가 실시돼 성곽의 현황과 성내 유적 추정지를 상세히 파악하게 됐고, 이는 2003년부터 2019년까지 10차에 걸친 발굴조사로 이어졌다. 그 결과 북문지, 치성, 집수정, 대벽건물지 등의 유적과 목간, 원저단경호, 주부토 명문기와, 각종 토기·철제 무기 등 1천800여 점의 유물이 발굴됐다.

이를 통해 계양산성 일대가 삼국시대 한강 하류와 서해 연안을 군사적으로 제어하는 핵심 거점으로 중시됐고, 5세기께 백제가 이곳에 처음 성을 쌓은 이래 신라와 고려가 차례로 성을 점유·사용했으며, 주 사용 시기는 통일신라시대(8세기)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토심석축기법’을 비롯한 당대 최고 축성기술 활용과 임진왜란 때 왜군에 의한 성문 변형 흔적도 발굴된 유적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게 됐다.

인천시와 계양구는 이러한 학술적 성과와 성내 분묘 이전 등 유적 정비 성과, 국가 차원의 보존·활용 필요성을 정리해 2016년 문화재청에 계양산성의 사적 지정을 신청했고, 오랜 검토와 논의 끝에 2020년 3월 사적분과 문화재위원회에서 계양산성의 사적 지정 안건이 가결됐다.

이로써 계양산성은 지역주민뿐 아니라 온 국민이 함께 보호하고 가꿔야 할 국가적 문화유산이 됐다. 그러나 사적 지정 이후 지난 3년간을 돌아보면 추가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하고 성벽과 탐방로를 정비하는 등 상당한 성과도 있었지만, ‘전문적인 유적 관리 체계’가 마련되지 않고 계양산성박물관 운영도 비전문기관에 위탁되는 등 사적 지정 당시 문화재위원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점도 확인된다.

첫 술에 배부르지는 없겠지만, 국가지정문화재 격에 맞는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유적의 관리·활용을 위해 문화재청과 관계 기관의 더 큰 관심과 노력이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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