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이달 초 강제 동원 판결 해법을 발표했다. 한국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일제 강제 동원 피해자에게 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를 하겠다는 내용이다. 일본 전범기업의 배상 참여와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 요구는 정부안에는 없었다.

정부는 이번 배상안이 ‘대승적 결단’이라고 했다. 반발이 일자 지지자들은 배상안에 대한 일본의 조치를 두고 보자고 거들었다. 정부가 발표한 뒤 열흘 만에 열린 한일정상회담에 자연스레 눈과 귀가 쏠렸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우려한 대로 기시다 총리의 직접 사과나 유감 표명은 없었다. 외려 윤석열 대통령이 전범기업에 대한 구상권 청구 가능성마저 일축하면서 비판이 쏟아졌다.

한 술 더 떠 회담 이후 일본에서 기시다 총리가 위안부 합의 이행을 촉구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 보도와 관련해 위안부 문제를 의제로 논의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폈다. 회담에서 독도 영유권을 언급했다는 기사에 대해서도 정부는 부인했다. 정상회담이 끝났지만 국내에서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실 공방을 시작했다.

회담 앞뒤 상황을 지켜보면 양국이 자꾸만 본질을 비켜 간다는 생각이 든다. 한일관계를 풀자고 말하면서 관계를 가로막는 문제가 무엇인지는 얼버무린다. 일본은 전쟁을 일으킨 가해자고 한국은 식민지였던 명백한 피해자다. 이는 지우지 못하는 역사이자 양국 관계를 둘러싼 갈등의 본질이다.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니 그 산물인 강제 동원과 위안부, 독도 같은 문제에서 어김없이 탈이 난다.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듯 이제는 회담에서 위안부 이야기를 했는지, 독도를 언급했는지마저 쉬쉬해야 하는 형국이다.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는 강제 동원 피해자를 우리 정부가 설득하겠다고 나서는 촌극이 벌어졌다.

과거사에 대한 양국의 공감대 형성 없이 관계를 회복하자는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아 도무지 말이 안 된다. 역사의 피해자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안을 실리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행태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상처가 있고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 양국의 지속가능한 관계를 위해서라도 눈감아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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