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게 뭐 어때서

김수민 / 한겨레출판사 /1만4천400원

이 책은 독자에게 롤모델이 되는 성공한 아나운서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의 씩씩한 실패와 도전이 하나의 레퍼런스가 돼 그와 나란히 선 독자에게 용기로 가 닿는 책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중 ‘최연소 아나운서’로 SBS에 입사해 세간의 관심을 받고, 아나운서 생활 3년 만의 퇴사 그리고 "배 속에 든 건 똥뿐인데 결혼한다"는 재기발랄한 결혼 발표로 또 한 번 화제가 됐던 김수민. 주어진 길만을 따라가지 않고 순간마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되물어온 그의 첫 번째 에세이가 마음속에 새로운 기운이 움트는 3월 출간됐다.

근사한 성취만을 내세우는 세상에서 숨 가쁘게 살다 보면 종종 길을 잃은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열심히 달리는데 나 도대체 어디로 향하고 있지?’라는 의문과 함께. 방향을 잃은 채 하고 싶은 일이나 되고 싶은 모습에서 멀어진 직장인의 삶은, 지갑은 비지 않게 해 줄지 몰라도 정작 몸과 마음을 궁핍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순간, 우리 마음속엔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해 본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 도망치고 싶다.’ 밤낮으로 병원을 들락날락거리며 버티던 아나운서 생활 3년 차, 저자 역시 온 세상이 멍이 든 듯 푸르스름하던 새벽녘에 거실 바닥에 앉아 스스로 이런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일하는 걸까? 나는 무엇이 되고 싶었나?’ 겉보기엔 반짝이고 번듯해 보여도 유성처럼 궤도를 잃고 떨어지기만 하는 자신의 현재 모습이 ‘실패’한 상태라고 느낀 그는 과감히 퇴사를 결심한다.

그런 우리에게 "막다른 길 앞에선 용기 내 자기 자신을 위해 도망칠 수 있으면 좋겠다"(11쪽)고 힘주어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용기를 심어 준다. 또 "도망은 비겁한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한 행동이며 자신 역시 기꺼이 실패하고 도망쳤기 때문에 조금씩 원하는 삶의 궤도를 찾았다"는 솔직한 고백은 실패에 대한 마음속 두려움을 깨뜨릴 뿐 아니라 틀에 박힌 성공만을 인정하는 사회의 경직된 잣대를 비튼다. 

죄 없는 죄인 만들기

마크 갓시 / 원더박스 / 2만2천500원

범인 10명을 놓치더라도 억울한 사람 1명을 만들지 않아야 한다는 법언은 사법제도의 금과옥조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잘못된 유죄판결로 억울하게 수감되는 이들이 있다.

‘화성 연쇄살인 8차 사건’ 범인으로 지목된 윤성여 씨는 20년을 수감하고 가석방된 뒤에야 진범이 밝혀지면서 누명을 벗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에서는 15살 최모 군이 살인범으로 몰려 10년형을 살았고, 재심으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우리 국민의 93%가 사법제도에 오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재심 사례에서 보듯 오판은 비일비재하다.

왜 이런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날까. 이 책은 죄 없는 죄인들을 만들어 내는 검경과 사법시스템의 잘못된 관행과 정치 요인 그리고 오판에 관여하는 인간의 심리 결함을 탐구한다.

비록 미국 사례를 다루는 번역서지만 검경의 무리한 수사와 유죄를 만들어 내는 정치 압박이 자주 문제가 되는 우리 사회에도 경종을 울리는 이야기가 된다.

주말엔 여섯 평 농막으로 갑니다

장한별 / 사이드웨이 / 1만8천 원

저자 장한별은 세종시에서 살며 직장생활을 하는데, 수년간 준비 끝에 충남 공주시 의당면 630여㎡에 농막을 올려놓았다. 그는 5도2촌(五都二村)의 삶에서 커다란 기쁨을 느끼며 아내와 함께 ‘파트타임 취미 농부’의 시간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

이 책은 그렇게 자신의 밭을 마련하고 농막을 지은 뒤 그 경험을 하나도 빠짐없이 꼼꼼하고 상세하게 옮겨 둔 ‘농막사용설명서’다. 개정한 농지법을 참고해 시골 땅을 사고, 수많은 업체 제품을 비교해 농막을 고르고, 농막 안을 자신만의 취향을 담아 정성껏 꾸미고, 팜 가드닝 시설을 손수 설치해 텃밭 농사를 직접 짓는 과정과 각 단계마다 꼭 필요한 조언을 상세하고 생생하게 펼친다.

그는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자신만의 자연 속 공간을 가꿨고, 거기에서 채소와 나무, 가축을 키우며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해 그 기쁨을 함께 누린다. 이제 그는 자신의 밭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창호 기자 ych23@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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