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전재학 인천 산곡남중학교 교장

우리는 불과 몇 달 전 10·29 참사 희생자를 위한 국민 애도 기간을 가졌다. 앞날이 구만리 같이 창창한 젊은이들의 희생을 견뎌 내기에 몹시도 버거웠을 이 땅의 부모들을 생각하면 같은 부모의 처지에서 참으로 눈시울이 뜨거워 주체하기 어려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이처럼 살아가면서 혼자 견디기에 어려운 버거운 수많은 짐을 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그 짐을 언제까지나 짊어지고 가기엔 우리의 삶은 너무도 짧고 소중하기에 이를 잊어버리며 자기 삶을 애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애도(哀悼)란 ‘사람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이다. 그런데 살아있는 사람이 자기의 삶을 애도하는 것이 필요한 까닭은 무엇인가? 정여울 작가는 "애도라는 말에는 단절의 의미가 들어 있다. 힘겨웠던 그 시간을 견뎌 온 과거의 나를 지금의 나에게서 떼어 놓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고통스러운 과거와 작별하는 제의적 몸짓으로서 ‘지난날의 나’를 처절히 애도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애도는 죽은 대상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고 지금의 나가 살아남기 위해 과거의 나를 죽여야 할 때도 필요하다.

필자는 중2 겨울방학 시절, 전국 5대 도시의 평준화로 인해 남은 비평준화 지역의 명문고에 진학하고자 D도시로 온 가족이 이주했다. 중3 시절은 명문 ○○고를 진학시키기 위해 중학교 전 교사는 오후 10시까지의 야간자율학습과 더불어 하나같이 성적 향상에 올인했다. 월례고사에서 기대치의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학생들은 틀린 문제의 숫자만큼 체벌을 받았다. 그때 맞았던 매의 고통이 너무 커서 필자는 "스스로 고통스럽게 반성하며 잘할 수 있는데 이렇게 맞아도 되는지"를 되새기며 당시 체벌엔 이중적인 마음으로 담담히 받아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목표했던 명문고에 진학한 후에는 당시 교련이라는 힘든 교육과정 시간에도 체벌 한 번 받지 않고 지내던 동기생들이 3학년이 돼 담임교사에게 청소시간에 제대로 청소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집단 체벌을 받았다. 몽둥이로 맞는 고통도 컸지만 정서적으로는 수치스러움을 감내하기 더 어려웠다. 이 체벌 경험은 두고두고 교직에 들어선 이후 한결같이 학생 교육에 교훈으로 삼아 역지사지하는 마음으로 체벌을 거의 하지 않은 계기가 됐다.

최근 정순신 변호사의 자녀 학교폭력 사건은 국민의 뜨겁고 비상한 관심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에 임명된 지 하루 만에 사임할 정도로 학폭에 대한 책임과 후유증은 이제 가해자 당사자만 아니라 그 부모의 대응에 대한 비교육적이고 이기적이며 빗나간 자녀 교육도 큰 문제로 제기됐다. 문제는 결과적으로 가해자는 최고 명문대에 진학하고, 피해자는 병원 치료를 받으며 심지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으며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고 끝내 불행한 고교생활로 마무리했다는 점이다.

최근 인기리에 방송되는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라는 학폭 드라마는 한 주인공의 학창시절 학폭 트라우마가 끝나지 않고 20년 후 잔혹한 복수극으로 부활했다. 학대와 폭력으로 얼룩진 과거를 잊지 못하고 살아온 세월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처절했을까 생각해 본다. 이는 ‘찢기고 짓밟힌 나’가 아닌 다시 ‘온전한 나’로 살아가려는 용기를 얻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기를 애도하고 새로운 삶으로 변화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바람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학폭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한편으로는 그로 인해 더욱 강해진 자기를 발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평생을 잊지 못하고 그 트라우마에 갇혀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이젠 용기 있게 결단하고 영구적으로 단절하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더불어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중 의식과 사람을 어떠한 수단이 아니라 최고의 목적으로 대접하는 인간 존중 사상을 부활해야 한다. 여기에 교사·학생 간 비폭력 대화법의 생활화와 회복적 생활지도에 더욱 힘써 모든 학교가 배움이 즐겁고 행복하며 자유로운 성장의 장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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