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신상구 충청문화역사연구소장

2023년 4월 1일은 아우내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 104주년이 되는 아주 뜻깊은 날이다. 

기미년 3월 1일 경성의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가 낭독되자마자 3·1독립만세운동은 마치 들불처럼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기미년 4월 1일 아우내장터에서는 천안·진천·청원·연기 주민 3천여 명이 태극기를 높이 들고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에 반대해 항일독립만세를 불렀다. 

아우내장터 항일독립만세운동은 조인원, 이백하, 유중무, 김구응, 유관순, 유중권, 홍일선, 김교선, 한동규, 이순구, 조만형, 박봉래가 주도했다. 특히 이백하는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를 구국동지회 명의로 기초했으며 조인원은 오후 1시께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는가 하면, 유중무는 자금을 담당해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을 실질적으로 이끌었다. 

서울 탑골공원과 남대문에서 항일독립만세운동을 목격한 유관순은 이화학당이 휴교하자 3월 13일 귀향해 아버지 유중권과 조인원, 숙부 유중무에게 서울의 상황을 전하고 태극기를 제작·배포하는 데 앞장섰다. 김구응은 지역 유지들과 젊은 청년, 학생들과 함께 항일독립만세를 외치다가 모친 최정철과 함께 현장에서 살해됐다. 홍일선과 김교선 등은 병천시장에 나가 독립만세 시위 참여를 권유했다. 

오후 1시께 조인원이 시장의 군중 앞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 독립 만세’를 선창하자 군중은 크게 환호했다. 병천 헌병주재소의 일경 5명은 만세 소리에 놀라 시장으로 출동해 해산을 요구했으나 시위대가 불응하자 발포했다. 사상자들의 친지는 시신을 헌병주재소에 옮기고 항의했고 김교선, 한동규, 이백하, 이순구 등이 군중 100명과 함께 주재소로 가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를 불렀다. 군중이 점차 늘어나서 1천500명에 이르렀을 때 헌병들은 권총을 발포했다. 

일제의 강제 진압으로 사망한 사람은 김구응, 김상헌, 박병호, 박상규, 박영학, 박유복, 박준규, 방치성, 서병순, 신을우, 유관순, 유중권, 유중오, 윤태영, 윤희천, 이성하, 이소제, 전치관, 최정철, 한상필 19명이다. 이들 중 14명은 일본 헌병의 총칼에 피를 흩뿌리며 현장에서 숨을 거뒀고, 나머지 열사들도 부상을 이겨 내지 못하거나 옥중에서 고초를 겪다 순국했다. 유관순을 포함한 많은 참가자들이 부상, 투옥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의 빛난 얼을 기리기 위해 1947년 11월 26일에는 병천 시가지가 내려다보이는 구미산에 아우내 독립만세운동 기념비를 건립했고, 1972년에는 유관순 열사 추모각을 지었다. 그리고 2003년 4월 1일에는 유관순 열사 기념관을 건립했고, 2009년에는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또한 지난해 4월 1일에는 천안시가 신규 독립유공자인 강홍식, 김상옥, 김순명, 김창록, 김태봉, 남상호, 방선봉, 송사일, 신성녀, 유용석, 유중대, 유중제, 유중춘, 유중하, 이근문, 이유광, 이의영, 이훈영, 장산용, 조병희, 허춘화, 홍일선, 황상칠 23인의 위패를 추가로 봉안하고 아우내 항일독립만세운동 선열의 위패봉안식을 유관순 열사 사적지 순국자추모각에서 거행했다. 

아우내장터 독립만세운동은 호서지방 최대의 항일독립만세운동으로, 독립선언서를 지역 실정에 맞게 지역화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와 가치가 매우 크다. 최근 필자가 3·1운동을 전문적으로 조사·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23년 3월 29일 현재까지 기미년 3·1운동 당시 지방에서 독립선언서를 자체 기초해 선언했다고 밝혀진 곳은 경상남도 함안(咸安)과 하동(河東)을 비롯해 3∼4곳에 불과하다. 

그런데 아직까지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찾지 못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필자가 최근 인천대 독립운동사연구소장인 이태룡(李兌龍)문학박사와 박경진 작가(화가)의 도움을 받아 구국동지회의 실체를 밝혀 내 이제는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의 역사적 가치를 일부나마 제대로 평가받게 됐다. 그리고 천안·병천·진천지역 3천여 명의 성난 애국시민들이 아우내장터에서 목이 터져라 항일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미뤄 보아 지금 어디엔가 살아남은 후손들이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을 소장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필자는 미력하지만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전국적으로 ‘아우내장터 독립선언서 원본 찾기 운동’을 전개하는 데 배전의 노력을 경주할 각오다. 그리고 내가 학계에 최초 제기한 천안역전 3·3독립만세운동의 실체를 밝히고,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을 발굴하는 데에도 남다른 사명감을 갖고 매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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