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다. 주인공은 5년 전 비바람에 부러진 영통 느티나무 보호수다. 반천 년 동안 농경 마을 수호신이자 사람들의 벗이었고, 급격하게 도시로 변하는 과정에서도 자리를 지키며 신도시 주민들의 자부심이 된 나무다.

비록 지금은 화려했던 위용을 보지는 못하지만, 다시 그루터기와 의자가 돼 고향으로 돌아왔다. 후계 나무를 육성하고 나무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한 수원시 노력과 나무를 기억하려는 시민 노력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에필로그를 소개한다.

2017년 5월 늠름하게 서 있던 영통 느티나무
2017년 5월 늠름하게 서 있던 영통 느티나무

# 540년 역사를 품은 영통 느티나무

영통신도시 한가운데 있는 느티나무사거리에는 원래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다. 지금은 3m가량 밑동만 남았지만 ‘경기-수원-11’이라는 지정번호로 관리하는 보호수였다. 보호수로 지정한 1982년 당시 수령을 500년으로 추정했으니 40여 년이 지난 지금은 540살인 셈이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크기를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원래 이 나무는 23m 높이를 자랑했다. 20여 그루의 수원 보호수 중에서도 가장 높다. 흉고(가슴 높이 1.2m) 둘레는 8.2m다. 밑동 둘레를 한 바퀴 돌면 스물다섯 걸음을 걸어야 한다. 수형도 아름다웠다. 4m 높이에서 여러 가지가 펼치며 커다랗고 누구나 생각하는 동그란 나무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한 모습이었다.

2017년 산림청이 전국의 노거수와 명목을 평가해 뽑은 으뜸보호수 100주에 선정됐고, 보호수 이야기를 엮은 책 「이야기가 있는 보호수」의 표지에 실렸을 정도로 수려한 모습을 자랑했다.

영통 느티나무는 예로부터 신성한 나무로 여기며 수많은 전설이 있었다. 전쟁처럼 나라에 큰 어려움이 닥칠 무렵에 나무가 구렁이 울음소리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낸다고 하고, 수원화성 축조 때 이 나뭇가지를 잘라 서까래용으로 썼다는 이야기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벌목 위기에 놓인 나무를 지역 유지가 구했다고도 한다.

더욱이 오랜 세월 동안 당산나무로 치성을 받으며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 구실을 했다. 영통신도시가 개발되기 전인 1990년대까지 평범한 농촌 마을이던 영통리의 상징이자 마을 구심점이었다.

뙤약볕을 피해 멍석을 깔고 쉬거나 장기판을 펼치는 주민들의 쉼터이자 해마다 단옷날 청명산 약수터에서 산신제를 지내고 내려와 당산제와 동네 잔치를 여는 소통의 장이었다.

하지만 마을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느티나무는 아파트 숲 한가운데에 외로이 자리를 잡았고, 단오제는 명맥이 끊겼다. 이를 아쉬워한 주민들이 스스로 뜻을 모아 2005년부터 ‘청명단오제’를 지내면서 단오어린이공원 느티나무는 다시 영통구 주민의 화합의 장을 지켜보게 됐다.

밑동만 남은 영통 느티나무와 부러진 가지로 만든 조형물이 설치된 현재 모습.
밑동만 남은 영통 느티나무와 부러진 가지로 만든 조형물이 설치된 현재 모습.

# 부러진 느티나무, 후계나무로 역사를 잇다

단오어린이공원 터줏대감으로 남녀노소 주민들의 사랑을 받던 느티나무에 5년 전 변고가 생겼다. 초여름 장맛비가 시작되던 즈음이다. 세찬 비바람이 퍼붓던 날, 오후 내내 불어온 큰 바람에 사방으로 활짝 퍼졌던 가지들이 찢기듯 무너져 내렸다.

2018년 6월 26일 오후 3시께, 속살을 드러낸 영통 느티나무는 540년 역사를 뒤로하고 끝내 부러졌다. 나무 안에 텅 빈 굴이 크다 보니 바람을 견디지 못했다.

사고 소식을 들은 수원시는 즉각 대책을 마련했다. 남은 부분을 보호하고 복원할 방법을 찾으려고 나무병원을 비롯한 전문가와 함께 머리를 맞댔다. 부러진 느티나무를 위로하는 제(祭)를 올리고, 가지 들 잔해를 수거하는 한편 날카롭게 남은 부분을 다듬으며 주민 안전에도 만전을 기울였다.

이후 시는 전문가, 시민과 함께한 대책회의를 거쳐 보호수 복원 계획을 세웠다. 밑동에서 자라난 맹아(萌芽)와 주변에 흩뿌려진 씨앗에서 자라난 실생묘(實生苗)를 육성하고, 조직 배양으로 후계 나무를 키우는 방법도 병행했다.

복원공사는 이듬해 봄부터 시작했다. 경기도산림환경연구소와 함께 복원을 추진해 조직을 배양함으로써 후계목 20주를 증식하는 데 성공했다. 주변에 자라는 실생묘 중 우량목도 집중 육성하기 시작했다. 3m가량 남은 밑동은 자연스레 떨어지는 수피를 제거하고 방수·방부처리를 계속하면서 보존했다.

후계목은 쑥쑥 자랐다. 현재 15주는 산림환경연구소 실험실에 있고, 4주는 수원시 무궁화원에 마련한 양묘장에서 집중 관리 중이다. 화분을 거쳐 노지 적응을 진행 중인 후계목들은 1.5m가량 높이로 자라 제법 나무의 틀을 갖춰 가며 ‘엄마 나무’ 역사를 이어갈 준비를 한다.

단오어린이공원에 남은 밑동 주변에는 원래 느티나무 자녀 격인 실생묘 20주가 3~4m 크기로 성장했다. 기둥을 곧게 세우려고 지주목을 대고, 생장을 방해하지 않고 아름다운 수형을 갖추도록 가지치기를 비롯해 정성을 다해 관리한다. 후계목과 실생묘가 영통 느티나무의 실제 생을 이어가는 셈이다.

영통동 주민들로 구성된 영통시민뮤지컬이 참여해 만든 영통 느티나무를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 ‘나무아이’ 공연.
영통동 주민들로 구성된 영통시민뮤지컬이 참여해 만든 영통 느티나무를 소재로 한 창작뮤지컬 ‘나무아이’ 공연.

# 나무와 함께하는 삶은 계속된다

주민 삶 속에서 영통 느티나무 생명력도 끊어지지 않았다. 540년 넘게 사람들의 삶을 지켜봤듯이 여전히 한 자리에서 수원시민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든다.

영통구 축제인 ‘청명단오제’가 대표 격이다. 느티나무가 부러진 이듬해인 2019년, 주 무대는 인근 영통사 공원으로 옮겼지만 단오놀이 중 백미인 그네뛰기는 예전처럼 느티나무 앞에서 진행해 역사성을 잇는다.

이후 코로나19로 산신제만 진행하며 명맥을 유지했던 청명단오제는 지난해 다시 단오어린이공원에서 원래 모습으로 부활했다. 커다란 밑동으로 남은 느티나무 주변에 주민들이 소원 리본을 매달고 흥겨운 줄타기와 공연, 다양한 체험을 했다.

영통구 주민들은 색다른 방식으로 느티나무와 추억을 남기기도 했다. 주민들이 스스로 모여 활동하는 ‘영통시민뮤지컬’이 영통 느티나무 이야기를 소재로 한 뮤지컬을 창작해 무대에 올렸다.

영통1~3동 주민 20여 명이 참여해 만든 ‘나무아이’라는 제목의 뮤지컬은 2020년과 2021년 두 차례 무대에 올랐다. 한국전쟁 때 영통 느티나무 덕분에 목숨을 구한 주인공 ‘복순’이가 노인이 돼 치매를 앓으면서 느티나무를 엄마로 믿고 마음을 터놓고 지낸다는 설정이다. 더욱이 도시개발로 자연의 친구들이 곁을 떠나며 속이 텅 비어 버린 느티나무가 결국 비바람에 쓰러지는 서사를 더해 자연의 소중함을 담아냈다.

2018년 6월 비바람이 몰아쳐 영통 느티나무가 부러졌다.
2018년 6월 비바람이 몰아쳐 영통 느티나무가 부러졌다.

지금도 영통 느티나무는 그 자리에서 사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쉼터가 된다. 부러졌던 나뭇가지를 다양한 시설물로 다시 활용해 고향인 단오어린이공원에 설치함으로써 느티나무는 다시 주민들과 새로운 추억을 만든다.

원래 가지 모양을 그대로 살려 제각각의 자연스러운 형태를 뽐내는 벤치 5점, 숲속의집이나 피노키오 같은 모양으로 만든 조형물, 자동차와 평균대로 활용할 만한 어린이놀이터 자연물 놀이기구 2점이 공원을 더욱 특별하게 한다.

‘2018.6.26. 무너진 느티나무 보호수, 다시 우리에게 돌아오다! 2020.11.’이라고 동판에 새겨 시민들의 추억을 자극한다.

단오어린이공원에서 만난 한 주민은 "신도시에서 보기 어려운 멋있는 나무가 쓰러져 안타까웠는데, 부러진 가지로 만든 벤치를 보니 조금은 위안이 된다"며 "느티나무 밑동을 보며 소중한 자연을 잃기 전 잘 가꾸고 돌봐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안경환 기자 jing@kihoilbo.co.kr

 사진=<수원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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