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승 ㈔21세기안보전략연구원 원장
강석승 ㈔21세기안보전략연구원 원장

최근 북한의 잇따른 미사일 도발이 이뤄지는 가운데 ‘동전의 양면’처럼 내외의 관심을 끄는 중대한 사안(事案)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수많은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할 정도로 극심한 식량난이다. 우주에 수많은 인공위성을 띄우고, 달이나 화성에 탐사선을 보내는 최첨단 과학사회에 아직도 ‘먹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해 ‘굶어 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不知其數)로 발생한다니, 이는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다. 

주요 외신이나 전문기관들은 북한의 식량 사정이 ‘제2의 고난의 행군’을 불러올 만큼 매우 심각하다는 진단을 지속적으로 해 그 실상(實相)에 관한 의혹을 증폭시킨다. 미국 CNN방송 보도(3월 3일)에 따르면 "북한 내 식량공급량이 최소 필요량 이하로 떨어졌다"고 하며, 통일부도 브리핑을 통해 "일부 지역에서 아사자가 속출하는 등 식량난이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도 "북한 내 심각한 식량난으로 아사자가 속출하는 상황"이라고 했으며, 복수 소식통에 따르면 "하급 군인이나 변방지역, 주요 부대에서 근무하지 않는 군인들의 경우 하루에 300g도 채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울러 농촌진흥청은 지난해 북한에서 생산된 식량작물이 451만t으로 전년 469만t보다 3.8% 감소했다고 밝혔으며, 통계청도 지난해 북한 벼 재배면적이 53만9천679㏊로 전년 54만4천6㏊보다 0.8%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북한의 연간 곡물 수요량이 550만t이라고 추정할 경우 우리처럼 빵이나 우유, 육류, 과일, 라면, 채소 등 별다른 대용식(代用食)을 구하기 어려운 실정을 감안한다면 그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보인다.

잘 알려졌다시피, 북한의 매우 심각한 식량난의 원인은 유엔 들 국제사회의 치밀한 대북 제재, 코로나19로 인한 교역 중단, 봄가뭄과 장마철 집중호우, 한파(寒波) 등 기상조건 악화와 농업생산성 향상에 필수적인 인프라(비료, 종자, 관개시설, 농업용 기계 등)의 열악한 상황, 여기에 집단농장체제가 지닌 비효율적인 양곡관리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최고 통치자인 김정은이 얼마 전 열었던 당 중앙위 전원회의에서까지 "농촌문제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건설 위업 실현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전략적 문제"라고 단언하며, "올해 알곡기지를 기어이 점령하고 농업 발전 전망목표를 달성해 나가자"고 역설했겠는가.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인 1962년 10월 김일성은 최고인민회의 석상에서 "이제 몇 년만 있으면 모든 인민들이 이밥(쌀밥)에 고깃국을 먹고, 비단옷을 입으면서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서 안락한 삶을 즐기게 된다"고 낙관적인 견해를 피력한 바 있으며, 김정일도 "칼국수라도 배불리 인민에게 먹이겠다"고 단언했고, 김정은은 "이제 두 번 다시는 인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도록 하겠다"고 역설한 바 있다. 이렇듯 3명의 절대권력자들이 대대손손 호언장담(豪言壯談)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 때문에 거의 대부분 북한 주민들이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며 아사까지 할 정도로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는 걸까? 

같은 민족인 우리는 남아도는 ‘재고(在庫) 쌀’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데, 왜 유독 ‘우리민족제일주의’를 입버릇처럼 되뇌는 북한만이 최후진국가 대열에 머무는 걸까? 그 주된 이유는 대량살상무기인 핵무기와 중장거리 미사일 개발에 과도한 집착을 했기 때문에 정작 ‘마땅히 돌봐야 할’ 인민들의 식생활 문제를 도외시(度外視)한 결과가 오늘날 극심한 식량난을 야기했다고 본다. 즉,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독재를 지속적으로 담보하려는 체제 보위의 만용(蠻勇)이 불러온 결과가 바로 작금의 최악 식량난 상황을 가져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수십 차례 다녀온 필자의 견해로는 김정은을 포함한 최고위층들의 사고(思考)가 "인민들은 배부르면 다른 생각을 한다"는 점에 천착됐다. 또한 이들은 항간에서 큰 관심을 두는 대규모 아사자가 발생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1990년대 중반 북한 전역에 극심한 식량난이 엄습했을 당시 식량에 대한 저항력과 면역력이 약한 이른바 ‘순한 양과 토끼들’은 아사했으나, ‘승냥이와 늑대들’은 살아남았기 때문에 나름대로 내성(耐性)이 생겨 어느 정도 식량 사정으로는 결코 굶어죽지 않는다고 보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 전 세계에서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 ‘백신 접종’을 하는 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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