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또 비행기 안이다. 창문을 슬쩍 열어 본다. 파랑 물의 세계인 장대한 태평양이 하양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인다. 구름으로 세상을 가릴 수는 없으니까. ‘서재필’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 시대, 조선 말이라는 그 파멸의 시기에 이해해 주지도, 누릴 줄도 모르는 그런 백성들과 나라를 구하고자 온 존재를 내던졌던 인물들 가운데 한 분이다. 

21살의 그는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으로 탈출했고, 이어 그 시대 세계의 많은 지식인들, 실패한 혁명들과 마찬가지로 조그만 배를 타고 신세계인 미국으로 건너갔다. 공부해서 의사가 되고, 미국시민 자격을 딴 그는 다시 고국으로 돌아왔다. 가족들과 친척들까지 도륙을 내고 노예로 만든 그런 조선에 말이다. 독립협회를 만들고 독립신문을 발행하는 등 민권운동,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그는 또다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와 그들의 이러한 거대한 희생이 없었다면 동학농민혁명이나 3·1운동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런 삶을 산 특별한(?) 인물들이 지금 이 땅에는 몇 명이나 있을까?

나는 이미 그 시대부터 조선의 운명에 큰 영향을 끼쳤고, 지금도 영향을 끼치는 미국으로 날아가는 중이다. 한국 역사학을 전공하는 노학자가 62명의 노벨상 수상자들, ‘조지 부시(아버지)’와 ‘빌 클링턴’ 같은 미국 대통령을 5명이나 배출하고 전 사회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예일대학교 동아시아연구원에서 한국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특강을 하기 위해서다. 

예일대학교가 있는 동부의 소도시 뉴헤이븐은 도시 자체가 대학교였다. 길 양쪽에는 수백 년 된 고딕식, 때로는 그리스 양식으로 된 건물들이 서 있다. 미국 동부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신흥 국가인 이곳에는 오히려 전통과 옛스러움이 있고, 반면 반만 년 역사의 현장인 한국에는 전통이라는 체취를 느낄 수도, 볼 수도 없다. 

강의 시간에 쫓겨 학교 내부들을 서둘러 흘낏흘낏 살펴보면서 강의장에 들어섰다. 강의실 안에는 이미 많은 청중들이 앉아 있었고, 계속해서 입장하는 중이었다. 어느 정도 자리가 찼을 무렵에 발표하고 나와 토론할 ‘오드 베스타(Odd Westad)교수’가 천천히 걸어 들어온다. 거구에 카리스마가 풍기는 첫인상이다. 그는 중국과 조선의 관계를 다룬 「제국과 의로운 민족(Empire and Righteous Nation)」의 저자로서 한국에도 제법 독자를 갖고 있는 예일대학교 사학과 교수였다. 그는 약 30분 동안 발표했다. 이어 나는 ‘수천 년 한국 역사의 생성과 발전(Thousands of Years of Korean History:Birth and Growth)’을 주제로 강의했다.

모두 90여 분에 걸친 강의가 끝났다. 나는 중국인들, 일본인들이 왜곡시켰고 서양인들이 오해했던 한국 역사를 바로잡고, 가능하면 긍정적이고 거시적으로 해석했다. 또한 중국이 자신의 국가라고 세계에 선전하는 고구려와 발해가 완전한 한국 역사라는 사실을 강조했으며, 특히 발해는 해양을 활용한 강력하고 자주적인 국가였음도 발표했다. 많은 질문들이 있었고, 노르웨이 출신인 베스타 교수는 바이킹의 후예답게 나의 ‘동아지중해(East Asian Medeterranean sea) 모델’에 관심을 보이며 질문들을 했다. 이어 17일에는 장소를 옮겨 진행했다. 

사실 주최 측은 한국 역사라는 다소 생경한 주제와 휴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오후이기 때문에 청중들이 많지 않을 것이라고 근심하며 여러 번 말했다. 아마도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듯했다. 하지만 모두가 기우였다. 근심과 우려는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고, 야릇한 흥분과 기대감으로 설렘이 차기 시작했다. 강의실은 꽉 찼다. 이미 예일대 곳곳에는 소문이 난 모양이다. 실제로 늦게 도착해 발길을 돌린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2차 강의의 내용은 ‘고대 한국문화와 유라시아 세계와의 연관성(The Ancient Cultural Exchang of Korea and Eurasia)’이다. 1차 강의 때보다 더 많은 질문들이 나와서 결국은 11번째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예일 사람들은 이 발표에 깊은 관심을 가졌고, 청중들은 흥미와 관심을 넘어서 일부 내용에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나 또한 놀랄 수밖에 없었고 약간의 흥분까지 느꼈는데, 사실 특별한 내용은 아닌 늘 하던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는 수천 년이었고, 만주 일대는 우리 민족의 발상지이며 원조선, 고구려, 발해 등의 중요한 영토였다. 우리는 고대부터 중국과는 다른 언어, 혈연, 문화 등을 가지면서 역사와 종족이 단절 없이 정통성과 고유함을 지켜온 민족이었다 등등….

다만, 몇 가지 나의 학설들을 덧붙이고, 그를 통해 우리와 동아시아 역사를 구체적이고 조금 다르게 해석한 것이 다소 특별할 뿐이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만주지역의 생태환경을 분석하고, 사료와 언어학 연구 결과를 활용해 북부·서부· 동부에서 살았던 몽골어계· 퉁구스어계 종족들은 우리와 매우 친연성이 강했고, 특히 중국 사료에 따르면 선비 거란 등은 부여와 언어가 통했다는 사실이다.

또 기존 역사 해석과 달리 ‘동아지중해 모델(동아시아를 지중해 형태와 성격을 가진 것으로 파악하는 이론)’을 설정하고, 고대에는 해양활동이 활발한 해륙국가였으며, 때문에 지정학적으로 동아시아 세계에서 중핵(core)이나 허브(hub)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선사시대를 거쳐 고대에는 주민들이 일본 열도로 대거 상륙해 문화를 전파하고, 농토를 개척했고, 소국들을 만들었다고 했다. 

이와 함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지만 중국은 국가나 종족 개념이 아니므로 ‘질서’, ‘문화’, ‘공간’ 개념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중국 역사의 중심지역도 절반의 시간은 만주, 몽골 초원 등에서 내려온 이민족들이 세운 정복국가들이 많았고, 그들은 오히려 우리와 연관성이 깊었다는 주장은 청중들을 놀라게 만들었다. 또 우리는 ‘은자의 나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아니라 해양활동이 활발했으며, 최소한 청동기시대부터는 유라시아 세계와 직접 연관을 맺고 교류가 활발했다고 소개했다. 청중들은 놀라워했다. 

이러한 내용들은 중국인이나 일본인 또 서양학자가 아니고 한국학자, 그것도 고대사를 전공하는 학자가 직접 말한 것이었다. 청중들은 두 번에 걸쳐서 평소에 조금이나마 알던 한국의 역사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동아시아 역사까지 다르게 들은 셈이다.

"왜 만주가 한국의 영토였는가"라는 어처구니없는 질문들까지 받으면서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많은 생각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오랫동안 우리 역사와 민족의 정체성을 잊은 채로 살았구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우리 존재와 가치를 어떻게 평가하든 별로 관심이 없었고, 우리 존재와 정체를 알리려는 노력도 거의 안 했구나. 어쩌면 짧은 기간일지도 모르지만, 너무 힘들게 살았다는 식의 변명이 통할 정도를 넘어서는 남다른(?) 삶을 살았구나. 

그러니 아직까지도 대중문화가 확산하는 현상에만 환호하고, 한류와 BTS를 내세우는 중이다. 또 유튜브에는 우리가 잘났고 위대한 국가였다는 각종 주장과 도표, 지도들이 난무한다. 정작 문화, 역사, 사상 등 우리의 존재와 가치, 근거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알려 하지 않고 중국이나 일본, 외국에는 알릴 생각을 못한다. 이러한 여러 생각들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세계 사람들이 ‘나’라는 존재를 포함하는 ‘우리’를 어떻게 평가했는가를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단상에 선 강의자로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지식인으로서 자괴감을, 역사학자로서 수치심과 치욕감이 차올랐다. 상투적이지만 이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포기할 정도로 아주 늦진 않은 듯하다. 이제는 다행히 그들이 우리를 확실히 알고 싶어 한다. 이 결코 오래 지속되지 않을 짧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역사학자들은 더 이상 주눅 들지 말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학문의 내용과 질에도 방향의 수정이 필요하다. 더 거시적이고, 넓은 사안을 갖고 구체적인 소재와 주제를 선택하고, 역사학의 존재 이유와 목적에 충실해야 한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정부는 적극적으로 우리 문화의 정수와 왜곡되지 않은 바른 역사를 전파하는 정책을 만들고, 세계를 대상으로 좀 자신감을 갖고 사업을 벌여야 한다. 이렇게 무식하고 우물 안 개구리들의 울음소리 같은 행위들을 계속할 수는 없다. 자랑스러운(?) 한국 민중들도 이제는 삶의 주체로 인식하고, 보다 의미 있는 존재로 고양시키는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강의 거의 끝부분에서 소위 ‘한류’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한국 고대문화를 이야기했다. 홍익인간 등 한국의 고대 사상은 21세기 새로운 성격의 인류문명이 만들어지는 데 유효성이 높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제언한 것이다. 왜냐하면 철저한 ‘인간주의’, 완벽한 ‘평등사상’은 인간이 지켜 온, 또 지켜야 할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아! 만약에 2023년도의 한국 사회가 대중문화와 정치놀음에 쏟아붓는 사회적 비용의 100만 분의 1만 역사와 문화에 투자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예일대 동아시아연구원의 한국 역사와 문화 특강을 마쳤다.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강의실 안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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