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과 건축물은 인간이 삶을 펼치는 무대다. 세월이 흐르면서 흥망성쇠를 반복하며 저마다의 고유한 역사와 이야기, 분위기와 향기를 품는다.

오래되고 낡은 건축물을 완전히 허물고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는 대신 옛 건축물 기억을 살리고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는 ‘재생’이 의미를 갖는 까닭이다.

수원시가 건축물과 산업유산을 비롯해 주요 건축자산을 재활용한 성공 사례도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새로운 만남으로 역사를 잇는다. 첫 번째로 소개할 공간은 팔달산 아래 자리잡은 열린문화공간 ‘후소(後素)’다.

열린문화공간 후소 입구.
열린문화공간 후소 입구.

# 200년을 품은 터, 40년을 품은 건물 

수원화성의 관광 거점 화성행궁을 바라보고 왼쪽으로 수원시화성사업소와 수원문화재단 건물 사이로 열리는 행궁길은 공방거리로 유명하다. 나무·도예·칠보를 비롯해 다양한 공예를 체험하는 공방이 줄지어 들어섰고,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개성이 넘치는 카페와 음식점을 구경하는 자체만으로도 즐거울 뿐만 아니라 도시에서는 보기 어려운 우물도 남아 매우 특색 있는 거리다.

아기자기한 행궁길을 200m가량 걸어가다 보면 잘 꾸민 정원을 갖춘 2층짜리 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열린문화공간 ‘후소’다.

다닥다닥 붙은 원도심 건물 사이에서 숨을 틔워 주는 정원은 아담하지만 기품이 흐른다. 입구에는 안쪽 방향으로 안내하듯 팔을 뻗은 멋진 소나무가 있고, 여러 종류의 나무를 잘 관리해 제각각 자태를 뽐내면서 행인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공간 이야기는 19세기에 시작한다. 1861년(철종 12년) 이병진이 지었고, 이후 을사오적 중 한 명인 이근택(1865~1919년)이 의적에게 칼을 맞은 뒤 수원으로 이사해 죽을 때까지 살았던 집이라고 알려졌다. 1922년부터 수원 대지주였던 양성관(1867~1947년)이 소유하면서 ‘양성관 집’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남창동 99칸집 터였다.

팔달산 아래 5천200여㎡가 넘는 넓은 대지를 차지했던 남창동 99칸집 일부는 일제강점기 이후 수원지방검찰청과 남창동사무소로도 사용했다.

지금 모습은 1970년대에 갖췄다. 양성관 후손들이 소유하던 99칸집을 38개 필지로 나눠 팔았다. 원래 집은 문화 가치를 인정받아 1973년 10월 일부는 한국민속촌으로 옮겨 지금도 옛 모습을 확인 가능하다.

필지 중 99의 28(653㎡)은 백내과병원장이 사서 집을 지었는데, 바로 현재 건물 원형이다. 1977년 신축한 건물은 ‘예술의전당’을 설계한 김석철 건축가가 설계했고, 이후 40년간 건축주가 살면서 ‘백내과 원장집’으로 알려져 부촌 집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기억에 남았다.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공방거리에 위치한 열린문화공간 후소 전경.
수원시 팔달구 행궁로 공방거리에 위치한 열린문화공간 후소 전경.

# 오래된 공간에 불어넣은 새 생명

99칸집 터에 들어선 옛집은 2017년 11월 수원시가 산 뒤 새로운 사명을 부여했다. 대지면적 1천170㎡, 건축총면적 334㎡, 지상 2층 규모 백내과 원장집을 리모델링해 시민 쉼터이자 문화예술공간으로 활용하면서다.

오래된 건물의 재활용을 고민하며 다양한 의견을 들은 수원시는 후소 오주석 선생을 기념하는 공간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내부 리모델링은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도 전시 공간으로서 활용을 최대한 높이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먼저 방 2개와 거실, 주방, 식당, 화장실을 갖춘 보통의 가정주택 구조인 1층은 문화와 전시 공간으로 만들었다. 건물 중앙 거실은 전시실로, 안쪽 방 두 개는 터서 교육과 회의실로, 입구 맞은편에 있던 주방은 사무실로 바꿨다.

방 2개와 복도, 계단, 화장실, 옥외 공간이 있던 2층은 상설전시공간과 자료실로 만들었다. 큰방에 자료를 비치하고, 작은방과 복도, 발코니를 개축해 ‘오주석 서재’를 꾸몄다. 게다가 현관은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주택 구조를 그대로 보존해 집의 느낌을 살렸다.

반면 외부는 개방감을 위해 다양한 변화를 줬다. 상대를 억압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높은 담장은 큰 폭 낮췄다. 3~4m 높이로 내부 정원이나 건물 모습이 보이지 않던 원래 담장을 허리께 높이로 내렸고, 재료 또한 공방거리에 어울리도록 바꿨다.

입구 쪽에 별도로 있던 차고 건물도 철거한 뒤 작은 잔디밭을 만들어 누구나 쉬어 가는 편안한 쉼터를 조성했다. 또 1층 거실 공간에서 마당으로 이어지는 나무데크를 설치해 내부 공간을 확장하는 느낌을 연출했다. 정문은 제주도 전통주택에서 차용한 ‘정낭’을 세워 개방감과 열린 공간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모든 준비를 마친 2018년 9월, 열린문화공간 후소는 문을 활짝 열고 사람들을 맞았다.

한 관람객이 열린문화공간 후소 1층 전시공간에서 진행 중인 테마전을 감상했다.
한 관람객이 열린문화공간 후소 1층 전시공간에서 진행 중인 테마전을 감상했다.

# 시민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공간

열린문화공간 후소는 크게 2개 공간으로 사용한다. 1층은 전시 공간으로, 2층은 ‘오주석 서재’로 꾸며 행궁길 여행 중 가볍게 산책하듯 즐기는 친근한 문화 공간이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뒤 왼쪽으로 돌면 전시 공간이 펼쳐진다. 가정집을 개조해 만든 만큼 규모는 작지만 전시실 품격은 결코 낮지 않다. 오히려 아늑한 공간에서 오롯이 작품과 만남을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지금은 테마전 ‘에필로그-어느 수원 연극인’을 전시한다. 수원 출신 연극인 고(故) 김성열(1954~2019년)과 수원 연극사를 다시 비추는 내용이다.

대학시절부터 수원에 살면서 연극 활동을 한 김성열은 1983년 극단 ‘성(城)’을 창단하고 ‘혜경궁 홍씨’, ‘정조대왕’, 뮤지컬 ‘나혜석’을 비롯해 수원 문화와 역사를 주제로 한 연극을 만들었다.

또 수원화성 축성 200주년을 맞은 1996년에는 ‘제1회 수원성 국제연극제’를 기획하는가 하면 수원지역 연극계 발전을 이끌었다. 오는 8월 13일까지 여는 이번 전시에서는 그가 기증한 연극 홍보물, 극본, 사진, 영상 같은 자료를 보며 수원 연극의 역사를 가늠함 직하다.

오래된 나무계단을 올라 2층으로 들어서면 고서 특유의 향기가 가득해 ‘서재’에 왔음을 직감한다. 수원 출신 미술사학자 오주석 서재를 재현한 공간이다.

후소 2층에 마련된 오주석 선생 서재.
후소 2층에 마련된 오주석 선생 서재.

열린문화공간 후소라는 이름은 그의 호에서 따왔다. 다양한 저술과 전시 기획으로 김홍도를 비롯한 옛 그림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환기시킨 인물로 평가받는 오주석이 남긴 저서와 연구자료가 이곳에 남았다.

창문에서 보이는 정원과 팔달산의 고즈넉한 풍경이 일품이다. 가장 안쪽에 있는 아담한 규모의 미술사 자료실에는 작은 테이블 두 개가 놓여 건물보다 나이가 많은 고서를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또 계단 왼편 작은 방에서는 풍속화 들을 클래식과 함께 즐기는 영상물을 상시 상영한다.

공간과 건축물을 추억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종종 이어진다. 99칸집에 살았던 양성관 후손들이 후소로 변한 공간을 찾아 옛집을 그려 보기도 하고, 백내과 원장댁 후손들이 낮아진 담장을 보며 추억을 회상하기도 한다.

열린문화공간 후소를 찾은 한 관람객은 "화성행궁과 팔달산을 방문했다가 알게 돼 가끔 쉬어 가는 공간인데, 수원시 노력으로 오래된 공간의 역사를 잇는다는 사실에 고마움을 느낀다"고 했다.  

안경환 기자 jing@kihoilbo.co.kr

사진=  <수원시 제공>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