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요즘 뉴스를 달구는 두 가지 상징적인 사건을 접하면서 안타까움과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참기가 어렵습니다. 전세사기로 인해 세 명이나 소중한 생명을 끊었다는 소식과 당대표 선거 막바지에 300만 원씩이 든 돈 봉투를 돌렸다는 뉴스가 그것입니다.

"엄마, 2만 원만 보내 주세요. 그렇게 급하지는 않으니 편할 때 입금 바랄게요."

고교 졸업 후 곧바로 취업한 청년은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모은 돈으로 전세를 살았는데, 이젠 9천만 원의 전세금 모두를 날려버리게 됐으니 얼마나 허망했을까요.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도저히 살아갈 길이 없자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2만 원만 보내 달라고 부탁합니다. 그것도 엄마 처지를 헤아려 ‘그리 급하진 않으니 편할 때 보내 달라’고까지 했다니, 참혹한 현실 앞에서도 엄마를 헤아리는 성실하고 착한 그 청년,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여건에 내몰려 희망을 잃고 살아가야만 하는 수많은 이들을 도우라고 온갖 특혜를 부여하면서까지 정치인들을 여의도로 보냈는데, 그들은 특혜에 안주하며 여전히 돈 봉투라는 썩은 늪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선술집에서 옆자리에 앉은 노인 세 분이 이 사건을 주제로 대화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갉아먹는 생쥐 같은 사람들", "한쪽은 이상한 목사의 늪에서 갈 길을 잃고 있고, 다른 한쪽은 돈 봉투나 돌리고 있으니!" 등등의 말로 언성을 높이다가, 말없이 앉아 있던 노인에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뭔가, 김 노인?"이라고 묻자, 노인은 짧게 답했습니다. "탐욕이지."

그렇습니다. 탐욕은 남의 것을 취하고 남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강한 욕망입니다. 정치인이 탐욕에 눈이 멀면 ‘국민의 행복’이라는 정치의 본질은 사라져 결국에는 본인은 물론이고 국민 전체가 절망의 늪에 빠져 버립니다.

「지혜의 보석상자」(심창희)에 흥미로운 우화가 있습니다.

사향노루 한 마리가 산과 강을 다니며 자신의 코를 자극하는 향기를 맡았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절벽 위에 다다랐을 때 마침 절벽 아래에서 바람이 불어와 산뜻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습니다. 정신이 혼미해진 노루는 그 향기를 찾겠다며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습니다. 온몸이 으스러진 노루는 조금 더 진해진 향기를 맡으며 서서히 죽어갔습니다. 자신에게서 그 향기가 난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입니다. 자신이 찾던 향기는 바로 자신의 것이었습니다. 

정치인에게 있어 ‘향기’는 바로 ‘초심’일 겁니다. 처음 정치권에 발을 들였을 때 지녔던 마음, 즉 ‘나라와 국민의 행복을 위해 온몸을 바치겠다’는 그 초심이 주어진 특혜에 익숙해지고 더 높은 자리에 대한 탐욕으로 변질되면 노루의 최후와도 같은 나락으로 떨어질 겁니다.

정치인의 탐욕은 정치의 본질인 초심을 망각할 때 발현됩니다. ‘나만이 돼야 한다’는 탐욕이 자신의 눈을 가리면 그때부터 모든 사람은 소중한 인간이 아니라 한 표로만 보이고, 그들이 주인이 아니라 자신만이 주인이라고 착각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초심’이란 향기는 그저 정치 교과서에나 나오는 진부한 말로 치부되고, 그들이 이러는 사이에 2만 원조차도 없어 결국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는 청년과도 같은 비극은 더욱더 늘어날 겁니다.

2만 원과 300만 원으로 상징되는 이 나라의 안타깝고 부끄러운 민낯을 보면서 정치인들에게 전해드리고 싶은 두 사람의 말이 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어둠으로 어둠을 물리칠 수는 없다. 오직 빛으로만 할 수 있다"는 것과 케네디 대통령의 "우리들의 가장 기본적인 연계 고리는 이 작은 행성의 주인이며, 모두 똑같은 공기를 마시고, 모두 자손들의 미래를 소중히 여기며, 유한한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라는 겁니다.

남의 슬픔을 외면할 때 인간은 자기중심적이 돼 버려 자기의 성공과 행복만을 추구하게 됩니다. 청년들의 안타까운 죽음이 더 이상 없도록 정치인들의 각성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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