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범석 인천시 서구청장
강범석 인천시 서구청장

어른이 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할까? 아마도 ‘어쩌다’란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가 ‘어른’ 아닐까 싶다. 어렸을 땐 그렇게도 되고 싶었던 어른이었는데 ‘어쩌다’ 어른이 되고 보니 세상이 그리 팍팍할 수가 없다. 사실 알고 보면 어른의 기준도 상당히 애매모호하다. 어른의 사전적 의미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다. 과연 성인이 됐다고 자기 일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을까? 

하물며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자립준비청년이라면 그 벽이 더 높을테다. 여기 한 청년이 있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자립준비청년인 수찬은 킥보드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힘겹게 생계를 꾸린다. 배달하면서 만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은 대부분 쌀쌀맞다. 인터뷰 작가인 윤서 역시 마찬가지다. 그러던 중 둘은 다시 마주치는데 수찬은 생계 수단인 킥보드를 도난당한데다 믿고 따르던 선배한테 집 보증금마저 뺏긴 절망적인 상황이다. 인터뷰를 매개체 삼아 소통하면서 둘은 서로 마음을 열어가고 내 편 하나 없던 수찬에게도 어느새 ‘좋은 어른’이 하나둘 생긴다.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열여덟, 어른이 되는 나이’(감독:주영) 줄거리다. 처음엔 서구 사회적기업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이라 관심이 갔는데 알아보니 자립준비청년 얘기를 다루고 있어 공감대를 높여야겠다는 생각에 상영회와 함께 대담회를 열었다. ‘좋은 어른으로 살아가는 법’이란 주제 아래 열린 대담회에서는 내가 제시한 주거지원 현실화와 함께 세심한 접근, 개별적이고도 지속적인 심리지원에 이어 실질적인 정책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영화는 희망을 안고 끝나지만 실제 자립준비청년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자립준비청년 3천1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무려 절반가량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곧 시설을 떠나야 하는 아동들도 상당수 같은 대답이었다. 이유는 빈곤을 비롯한 경제적 문제가 가장 많지만 의지할 곳이 없다는 고립감도 꽤 높았다. 범죄에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 또한 불안 요소다. 영화에 나온 것처럼 자립정착금을 가로채거나 각종 범죄로 끌어들이는 경우가 상당하다. 때문에 시련이 닥쳤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누군가 나서야만 한다. 회복탄력을 위해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업, 사회가 연대해야 하는 이유다. 

다행히 경제적 지원은 다소 늘어났다. 올해부터 자립정착금이 800만 원에서 1천만 원으로, 자립수당이 월 35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확대됐다. 의료비도 의료급여 2종 수준으로 본인부담금이 줄었다. 안정적인 주거를 위해 공공임대주택도 연간 2천 가구가 우선 공급되고 전세 임대 무상 지원 역시 만 20세에서 만 22세 이하로 대상이 넓어졌다. 학자금 대출 부담도 확 낮아질 계획이다.

인천시도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인(人)품’ 사업을 시작했다. 부모 품처럼 돌본다는 뜻이다. 해마다 약 70명의 자립준비청년이 홀로서기를 준비하는 가운데 이들에게 주거·취업을 비롯해 6개 분야를 지원한다.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나서 생활 전반을 아우르는 통합 서비스를 실시, 자립준비청년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정착하도록 힘을 모은다. 청년센터 서구1939 운영 등 청년 정책에 아낌없는 지원을 펼치는 서구 역시 이에 기반해 현실적이고도 위로가 되는 울타리가 되고자 한다.

또 하나 중요한 건 끈끈한 연결고리를 만드는 거다. 이웃, 사회와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해 지속적인 연대로 마음까지 어루만져야 한다. 그러면 돈으로 해결하기 힘든 심리적 고통과 불안을 어느 정도 해소하지 않을까?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의 힘은 대단하다고 한다. 누구나 살면서 시련과 아픔을 겪지만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결국 해답은 사람이다. 자립준비청년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이고, 따뜻한 손길을 내밀고, 아름다운 동행을 이어나갈 ‘좋은 어른’이 필요한 이유다. 우리 역시 여러 사람의 보살핌으로 어른이 됐듯 세상으로의 발걸음을 조심스레 시작한 자립준비청년에게 ‘좋은 어른’으로 믿음직한 울타리가 돼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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