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현린 주필
원현린 주필

오늘은 준법 정신을 높이고 법의 존엄성을 고취하기 위해 제정된 ‘법의 날’이다. 법원과 검찰, 변호사단체 등 법조계는 해마다 법의 날이 돌아오면 나름대로 기념식을 갖고 법의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나는 법의 날을 맞을 때마다 누차에 걸쳐 ‘법의 날 유감’, ‘법조인에게 과연 윤리관이 있는가?’, ‘법의 지배’라는 등의 제하(題下)에 준법을 강조하곤 했다. 하지만 작금에 돌아가는 정국을 목도하고 있노라니, 우리는 과연 법에 의해 다스려지는 ‘법치국가인가?’에 대한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내로라하는 정치권 인사들, 특히 국회의원들은 대부분이 ‘법불가어존(法不可於尊)’의 신분(身分)인듯 하다. 출전이 「삼국연의(三國演義)」이기에 주지하고 있는 문구지만 인용해 본다.

조조(曹操)가 장수(張繡)를 토벌하려고 출병할 때다. 때는 여름철이라 들판을 지날 때 보리가 익어가고 있었다. 당시 백성들은 행군으로 인해 보리 수확을 못하고 있었다. 조조는 병사들에게 "행군 도중 보리를 밟는 자가 있으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참형에 처한다"라는 군령을 내렸다. 군사들은 추상 같은 명령을 지켜가며 보리 한 포기 밟지 않고 지나가고 있었다. 마침 밭에서 비둘기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조조가 탄 말이 그만 놀라 뛰면서 보리밭을 크게 뭉개버렸다. 조조는 행군주부(行軍主簿)에게 "보리를 밟은 내 죄를 심리하여 판결하라"고 명했다. 주부는 "어찌 승상의 죄를 논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조조는 "나 자신이 법을 만들고, 나 스스로 그 법을 범하면, 어떻게 사람들을 복종시키겠느냐(吾自制法, 吾自犯之, 何以服衆)"하곤 곧 차고 있던 검을 뽑아 스스로 목을 베려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곽가(郭嘉)가 말했다. "옛날 춘추에 의하면 존귀한 신분에는 법을 적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古者春秋之義, 法不加於尊)"하고 제지했다. 조조는 한참 침묵하다가 "춘추에 존귀한 몸에는 법을 적용할 수 없다는 대의가 있다면 내가 잠시 죽음을 미루겠소"라고 말하곤 검으로 자신의 상투를 잘라 땅에 던졌다. 상투를 베어 머리를 대신한 것이다. 이로부터 삼군(三軍)은 모골이 송연하여, 모두가 군령을 따랐다. 

오늘날 세칭 우리 정치 지도자들은 어떤가. 지은 죄도 부인하고 증거를 감추고 인멸하고 변명하기에 급급한 우리 정치계 인사들이다. 어쩌다 삭발을 한다 해도 당리당략(黨利黨略)과 사적 이득을 취하기 위한 어설픈 연기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다는 고위층부터 솔선해 법을 지키지 않으면 사회 기강(紀綱)은 무너진다. 기강은 사회를 지탱하고 있는 법도와 질서를 말한다. 우리는 흔히 "사회의 기강이 해이해졌다"고 말한다. 紀綱은 ‘벼리 기’, ‘벼리 강’이다. 벼리는 그물에서 위쪽에 코를 꿰어 잡아당길 수 있게 한 줄을 말한다. 이 벼릿줄이 느슨해지면 그물로서의 가치가 없게 된다.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법을 제정하는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앞장서 교묘히 탈법과 불법을 일삼으며 법을 무시하는 사례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때문에 ‘국회(國會)’가 ‘국해(國害)’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하여 법조계 인사들의 비리를 놓고, 차라리 ‘사법부(司法府)’가 아니라 ‘사법부(死法腐)’라 함이 옳다고까지 혹평하고 있다.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게다. 

어떤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기능을 가진 사람을 ‘기술자(技術者)’라 한다. 그 기술이 옳게 쓰이지 않고, 편법과 반칙으로 쓰여 ‘법 기술자’와 ‘정치 기술자’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면 곤란하다. 필자의 한 벗은 ‘법의 날’을 차라리 ‘법 기술자의 날’로 명칭을 변경해야 한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어느 부류보다 솔선해 법을 지켜야 하는 국회의원과 법조인들이다. 이들마저 무한욕망을 억제하지 못한다면 법치(法治)는 무너지고 궁극에는 사직(社稷)까지 위태롭게 된다. 이렇듯 민주국가에서 보기 드문 기현상(奇現象)이 나타나고 있는 나라가 부끄럽게도 대한민국이다. 법의 날을 맞아 실종된 법의 정신을 되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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