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삶은 수많은 선택과 가지 않은 길로 이뤄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나는 하나이기 때문에 선택의 순간에 이르면 결국 하나를 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자연스레 다른 가능성을 포기해야 함을 뜻한다. 그런데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바로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한 내가 또 다른 우주에 존재한다는 다중우주 세계로 전개한다.

2022년에 개봉해 관객의 열렬한 지지와 호응을 끌어낸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는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각본상·감독상·여우주연상을 비롯해 주요 7개 부문을 석권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150여 개 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미국에서 빨래방을 운영하는 중년의 중국인 여성 에블린의 삶은 지금 벼랑 끝이다. 30여년 전 아버지 반대에도 사랑하는 웨이먼드와 미국에서 정착하기로 했을 땐, 지금 같이 형편없는 현실을 기대하진 않았다.

더 나은 삶을 살리라는 꿈과는 달리 지금 그녀 앞에는 처리해야 할 세무조사 영수증만이 가득하다. 제대로 하지 못하면 가게는 압류될지도 모른다.

이토록 중요한 날이 아버지를 위한 신년 파티 행사와 겹쳤다. 오래 전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웨이먼드를 선택하던 날, 아버지는 딸과 인연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어머니도 안 계신 지금, 병든 아버지를 돌볼 사람은 외동딸인 자신밖에 없었다.

그 당시 아버지가 반대하던 남편의 물러 터진 성격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은 착했지만 매사가 바쁜 에블린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딸 조이조차도 말썽이었다. 애지중지 키웠건만 대학을 마음대로 중퇴하고 팔에 문신을 새기는가 하면 기행을 일삼더니 이젠 동성애인을 소개하기에 이르렀다.

실타래처럼 얽힌 에블린의 삶이 폭발 직전에 다다랐을 때, 우주의 존립이 자신의 손에 달렸다는 엉터리 같은 말을 다른 차원에서 온 남편에게 듣는다. 선택의 갈래들이 각각의 세계를 형성한 다중우주가 절대 악인 ‘조부 투파키’에 의해 파괴될 운명에 처했다는 얘기다.

거대 악에 맞서려고 에블린은 ‘버스 점프(Verse-jump)’ 기술을 익혀 다른 차원의 자신이 가진 능력을 내려 받는다. 그 과정에서 현재와 다른 모습의 에블린과 마주한다. 성공한 배우, 셰프, 가수, 쿵푸 수련자 들 모두 지금 보다는 나아 보였다.

그런 중에 절대 악의 존재가 딸 조이라는 사실과, 그 악을 제거해야만 전 우주가 온전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이에 다른 차원에서 온 아버지는 조이를 제거하자고 하지만 에블린은 그러지는 못했다. 바로 ‘조부 투파키’를 악으로 내몬 고통, 죄책감, 허무의 근원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복잡한 영화 서사를 단순하게 만들자면 이 작품은 가족의 갈등과 화합을 독특한 세계 구성과 기발하고 유쾌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부모가 자랑스러워 할 만한 자식이 되기 위한 노력, 그러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가족 간 골을 만들며 상처를 남겼지만 그 심연에는 자신과 가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한 데 있었다.

그저 함께하는 사람들의 다름을 존중하고, 다정한 마음을 나누고, 사랑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일. 바로 그 일이 모든 관계와 자신을 파괴하는 늪에서 벗어나는 소박하지만 값진 삶의 가치임을 영화는 전한다. 그렇게 모든 오늘을 소중히 하며 따뜻한 포옹을 건넨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모든 곳에서 행복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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