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옷에는 필요한 물건을 넣어두는 주머니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주머니가 없는 옷이 있습니다. 바로 수의입니다. 왜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을까요?

지인이 보내준 글 중에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이 나눈 대화가 인상 깊습니다.

어떤 사람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살아 있을 때 그는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고 해요. 그래서 그런지 장례식장에는 열 명가량 조문객만 참석했습니다. 그 죽음을 놓고 누군가가 불쌍하다는 듯이 혀를 찼습니다.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어, 안됐어."

이 말을 들은 어느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의 비극은 젊은 나이에 죽었다는 사실에 있지 않지 않고, 한 번도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데 있어요."

어떻게 살아야 죽었을 때 ‘제대로’ 살았다는 평가를 받을까요?

어느 스님이 "일생을 마친 다음에 남는 것은 우리가 ‘모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남에게 ‘준’ 것이다. 억척스럽게 모은 재산은 그 누구의 마음에도 남지 않지만 숨은 적선이나 따뜻한 격려의 말은 언제나 남게 마련이다"고 했고, 조선 시대 거상인 임상옥 선생은 "장사는 이윤을 남기기보다 사람을 남기는 일이다"고 말한 데서 답을 유추해 봄 직합니다.

두 분 말씀에 따르면, 제대로 산다는 얘기는 곧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나’의 기쁨이 되는 삶을 뜻합니다.

살아 있을 때 그토록 자신의 주머니 속에 넣고 싶어 했던 돈·권력·명예가 정작 죽을 때는 넣어둘 주머니조차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죽을 때가 돼서야 깨닫게 됩니다.

「긍정의 생각」(김형수)에는 미국 켄터키주 나딘 스테어라는 노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60세에 은퇴했습니다. 자녀들은 의사·변호사·공무원으로 살았고, 자신도 노후생활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큼 풍족했습니다. 독서를 즐겼고 여행도 많이 다녔습니다. 다니면서 자신들이 조금만 더 젊었으면, 하는 후회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부부는 자신들이 죽기 전까지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노트에 정리하기 시작했고, 그 이후 계획한 일들을 최선을 다해 실천했습니다. 지금 켄터키 공원묘지에는 이 부부의 묘가 있는데, 비석 앞에는 부부가 노트에 쓴 글을 새겼다고 합니다.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실수를 저지르며 살리라. 너무 완벽하게만 살려고 하지 않으리라. 매사에 여유를 갖고 세상사를 받아들이며 항상 몸을 부드럽게 가꾸며 살리라. (…) 더 자주 여행을 다니고 더 자주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의 삶에 감사하리라. 높은 산과 넓은 들에도 더 자주 가고 강가 계곡에서 수영도 더 많이 하리라. (…) 나는 그동안 이 나이를 먹으면서 수많은 새로운 순간들을 겪었지만,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면, 그런 경이로운 순간들을 더욱더 많이 겪으리라. 먼 뱃길을 떠나는 항해사처럼 오랜 세월을 앞에 두고 하루 하루를 내가 살았다고 느끼게 해주는 그런 순간들을 만끽하며 살아가리라.’

돈·권력·명예를 얻으려고 젊음을 낭비하지 말고, 그 대신 호기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호기심을 풀려고 도전하는 삶,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사는 대신 차라리 붉은 노을을 바라보며 경이로움을 느끼는 삶, 지금 이 순간 순간을 살았다는 기적을 느끼며 행복해 하는 삶,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노인의 절규입니다.

수의에 주머니가 없는 까닭은 살았을 때 ‘제대로’ 살아야 한다, 즉 ‘나’에게도 ‘너’에게도 도움이 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일깨웁니다. 권력·돈·명예에 집착함으로써 소중한 삶을 낭비하지 말고 차라리 그 시간에 자연과 친구가 되고 가족과 벗들과 아름다운 추억을 만드는 삶, 자신이 해야만 하는 일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즐겁게 그리고 기꺼이 그 일을 해 나가는 삶이 ‘제대로’ 사는 삶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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