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그는 민주화운동가, 혁명가, 시인, 사상가 등 다양한 명칭으로 한국 현대사에 큰 위상을 남겼다. 평생을 인권, 자유, 양심, 민족, 문명에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연구했으며, ‘생명사상’이라는 자기의 논리와 사상을 만들었다.

김지하를 분석한 글이 300여 편을 넘는다고 하는데, 그 밖의 글까지 포함하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듯싶다. 그런데도 나는 ‘사상가 김지하의 위상과 의미’라는 학술포럼을 기획하고 왜 논문을 발표하려는 걸까?

우선 첫째로, 돌아간 그를 위해서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오해하거나 왜곡시킨다. 김지하의 특정 발언이나 행위, 선택을 ‘섬망(일종의 정신질환)’ 중의 것으로 단정 짓고, 그를 ‘위악자(僞惡者)’라는 되지 않은 굴레를 씌운 인간도 있다. 끝까지 그를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듯하다. 

그래서 능력껏 내가 알고 구체적으로 체험한 김지하를 일부라도 사람들에게 알려 주면서 그의 가치를 평가하면서 드러내고 싶다. 이러한 일은 인간 된 도리이기도 하다.

둘째는 이 시대상황 속에서 김지하라는 존재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또 실제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는 소년 시절부터 말년 혹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일관된 삶을 살았다. 진실을 찾으려 했고,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며, 무엇보다도 세상에 대한 소명감이 강했다.

지금 한국인에게는 끝없이 진리를 탐구하고 실현시키는 실존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존재가 필요하다. 김지하의 사상과 문학, 사회적 삶은 미래 세대의 모델로서 필요하다. 물론 인류의 미래를 위해서도 김지하의 생명사상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누구나 다 인정하지만 지금 한국 상황은 비정상적인 면이 많고, 사회적 위기를 극복할 ‘사상’과 이를 이끌어 갈 사상가가 필요하다. 

그러나 불가사의하게도 한국에는 과거 역사에서도 그렇지만, 현대에는 사상가로 평가받는 인물들이 희소하다. 난 언젠가부터 김지하를 사상가로서의 가능성이 풍부하고, 그가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논리들을 제시하는 것을 주목했다.

실제로 나는 때때로, 그의 기분을 살펴가며 말하곤 했었다. "선배님은 ‘사상가’라는 이름으로 많이 활동하셔야 합니다." 그가 진정한 사상가로서 국내외 그리고 후대에도 이 시대를 빛냈던 의미 있었던 사상가로서 평가받고, 역사상에서 큰 역할을 하기를 원해서다.

그는 현대에 걸맞은 ‘생명사상’을 만들고 우리 모두에게 알려 준 사람이다. 그의 생명사상은 철저한 소명감과 실천 그리고 사형 언도와 무기징역, 8년에 걸친 감옥생활에서 실존을 체험하면서 그 씨앗이 뿌려진 것이었다.

그는 1980년 이후 사회 통념, 주변 억압을 뿌리치며 동학, 증산, 불교, 정역, 홍익인간, 풍류 등의 전통사상과 서양의 생태사상을 수용했다. 그러면서 생명의 실체, 생명의 표현과 구현 양식, 개체인 인간과 인류 문명을 위한 역할 등 다양한 주제로 평생 수행을 했다.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고,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토론했다. 또 자기 사상의 근저가 되는 역사적 상황을 체험하고 증거를 찾을 목적으로 현장 답사를 쓰러지기 직전까지 했다. 그리고 역사와 민족사상으로 전승된 생명사상을 시대정신에 걸맞은 ‘김지하의 생명사상’으로 확장하고 완성시켜 갔다. 

그가 추가하고 세상에 제기한 생명사상의 요체는 생명, 밥, 우주생명학, 천부경, 기연 묘연, 화엄, 신시경제, 홍익인간, 여인, 수왕, 모심, 밥, 살림, 시김, 향아설위 등의 낯선 말과 호혜경제, 사이버, 재진화 등의 현대언어들로 표현된 용어들이다. 그리고 ‘그늘’이다. 양지도 아닌 음지도 아닌, 어둠도 아닌 광명도 아닌, 그늘뿐만 아니라 실천가로서 그의 사상을 시, 산문, 사상담론, 그림, 실천, 강연 등으로 세상에 알렸다.

나는 그가 사상가였다고 판단한다. 비록 문학과 정치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이미 초기부터 수행자의 자세로 진리를 탐구했고 통찰력 획득을 통해 인간 본연의 모습을 깨달았다. 이후 실천가로서 소명감을 갖고 수미일관해서 생명사상 확립과 전파에 힘썼다. 

그의 생명사상은 후학들이나 다음 세대가 자신들의 시대상황을 고려해 가면서 ‘시대언어’와 ‘시대논리’로서 재구축하면서 발전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인류를 위해서. 

이제 꼭 1주기를 맞는 날 여러 사람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제는 그를 좀 편하게 놓아 달라고. 그를 더 이상 자신들의 굴레에 가둬 놓고 필요한 색을 덧칠하는 일은 멈춰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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