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기 변호사
이승기 변호사

2023년 4월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간호법이 의결됐다. 여당 국민의힘의 퇴장 속에 야당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일사천리 법안 통과가 진행된 것이다. 간호법이 여야 간 불협치를 상징하는 대표 법안이 되는 순간이다.

그래서인지 간호법을 둘러싼 후폭풍이 매섭다. 의사 대 간호사 대립 구조는 식상하다. 이미 그들은 의료법상 ‘의료인’으로, 사회에서 고학력 엘리트 직군으로 대접받고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평생 일할 정도로 직업안정성도 탁월하다. 그 명분이 어떠하든 ‘가진 자들’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여지는 이유다. 문제는 그 밥그릇이 풍성한 12첩 반상이라는 점에서 심금을 울리는 무엇이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를 간호사 대 보건의료인(간호조무사·응급구조사·요양보호사·방사선사 등)의 대립 구조로 보면 판이 바뀐다. 우선 보건의료인은 의료인이 아니기에 지극히 제한된 업무를 수행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이들이 작금의 간호법을 바라보는 시선은 불안하다. 

특히 간호법 목적을 서술한 제1조의 ‘모든 국민이 의료기관과 지역사회에서 수준 높은 간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구절은 논란의 핵심이다. 현행 의료법하에서는 장기 요양기관과 장애인 복지시설 등 의료기관이 아닌 지역사회 시설에선 간호조무사들이 간호사 없이도 촉탁의사 지도 아래 근무가 가능하다. 하지만 간호법이 등장하면서 앞으로 이들 시설에서는 간호사 없이는 간호조무사를 고용할 수 없게 된다. 규모·재정 면으로 열악한 시설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둘 다 채용하는 대신 간호사만 고용해 간호조무사의 일자리 감축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응급구조사와 요양보호사, 방사선사 등 소수 보건의료 직역들의 처지 역시 마찬가지다. 간호법을 통해 간호사의 업무 영역이 지역사회로 넓어지게 되면 결국 자신들의 업무가 침탈된다는 주장이다. 결국 보건의료인 시선에서 간호법을 보자면 12첩 반상은커녕 편의점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우는데, 정치권이 갑자기 도시락을 빼앗고 삼각김밥을 쥐어 준 셈이다.

여기에 직업차별적 규정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 대표적으로 간호법은 간호조무사 자격을 ‘특성화고 간호 관련 학과를 졸업한 사람’과 ‘고등학교 졸업자로 간호조무사 양성소(간호학원 등) 교육을 이수한 사람’으로 한정한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 졸업자만 간호조무사가 된다는 ‘학력 상한 규정’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이 규정대로라면 전문대 간호조무과가 생겨 이를 졸업하더라도 다시 간호학원을 다녀야 하는 불합리가 발생한다. 결국 ‘고졸 출신’ 간호조무사를 낙인찍는 현대판 카스트 제도가 공고화되는 것이다.

또한 야당 내에서 간호조무사협회장을 향해 과거 여당의 비례대표 신청 사실을 끄집어 내며 이번 간호법 반대 역시 정치 목적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나왔다고 한다. "메시지를 반박할 수 없을 때는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정치 술수가 등장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위 협회장이 "비례대표 자리를 준다면 85만 간호조무사의 권익을 위해 어느 당이든 갈 수 있다"고 발언한 건 오히려 통쾌했다. 직역의 이익을 위해 정치권에 진출하는 건 오히려 비례대표제 취지에 부합한다. 지금껏 노동계와 여성계, 교육계 등 각 직역 대표 주자들이 여야 정치권에 몸담아 온 사실도 같은 이유다. 

여기에 간호법 당사자인 간호사 출신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2명인 반면 간호조무사 등 보건의료인 출신은 ‘0명’이다. 국회는 그동안 이들의 권익을 대변할 비례대표 한 명 두지 않았음을 반성해야 함에도 뜬금없이 ‘정치 목적’ 운운하며 헛발질을 했다. 

간호법이 통과되는 순간 마치 올림픽 결승전을 본 듯한 장면이 펼쳐졌다. 한쪽은 승리의 기쁨을, 다른 한쪽은 패배의 상처에 길거리 쟁투를 벌인다. 국민들 간 갈등을 중재하고 그 합의점을 찾아야 할 정치권이 직역 간 중재 없이 법안을 통과시킨 대가는 참혹했다. 국민들을 완전한 승자와 패자로 갈라쳐 아사리판을 만든 것이다.

문득 나이팅게일 선서문의 "나는 성심으로 ‘보건의료인’과 협조하겠으며…"라는 마지막 구절이 떠오른다. 부디 정치권은 진짜 ‘정치’를 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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