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로 향하는 열차 안, 두 사람이 선반에 놓인 물건을 바라보며 대화를 시작한다. "저건 뭡니까?" "맥거핀입니다." "맥거핀이 뭐죠?" "스코틀랜드 고지대에서 사자를 잡을 때 쓰는 도구랍니다." "이상하네요. 스코틀랜드에는 사자가 살지 않는데요." "그래요? 그럼 맥거핀은 아무것도 아니군요."

맥거핀은 ‘속임수·미끼’라는 뜻으로, 미국 영화감독 알프레드 히치콕이 고안한 플롯 장치다. 영화 초반에 중요한 소재인 양 등장해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지만, 실은 별로 대단하지 않아 정체를 밝히지 않고 그대로 잊혀진다. 서사를 여는 열쇠가 바로 맥거핀이다.

기자는 업라이트피아노 조율사 자격증이 있다. 3년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몇 달 동안 집에만 틀어박혀 지낼 때였다. 어느 날 문득 자격증 하나쯤 가지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뭘 배워 볼까 고민하던 중 집에 있는 오래된 피아노가 눈에 띄었다.

뭐에 홀린 듯 1년 동안 서울로 조율 기술을 배우러 다녔다. 학원에 틀어박혀 몇 시간 동안 피아노와 씨름하고 집에서도 틈틈이 낡은 피아노 현을 새 현으로 교체하며 연습했다. 그 다음 해 1년에 한 번뿐인 국가공인 조율사 자격시험에 도전했는데, 2차 실기시험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마저도 채점조차 하지 못하는 ‘실격’이었다.

시험장에서 홀로 짐을 챙겨 들고 허무하게 나오면서 생각했다. "근데 왜 시작한 거지?" 회의감이 밀려와 그만둘까 고민하다가, 한 번만 더 해 보기로 했다. 열정이라기보다는 불안해서였다. 지금 끝내지 못하면 앞으론 아무 일도 시작하지 못할 듯싶었다. 수업료를 충당하려고 새로 일자리를 구하고, 휴무 땐 빠짐없이 학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1년을 더 매달린 끝에 붙었다.

자격증이 무색하게 그 뒤로 지금까지 한 번도 피아노를 만지지 않았다. 질려서가 아니고 더 이상 중요치 않아서다. 생각해 보면 피아노 조율은 당시 무기력에 빠졌던 기자를 움직이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게 하는 맥거핀이 아니었을까? 그런 뜻에서, 만약 또다시 실패가 찾아와도 마냥 패배감에 잠기지만은 않을 듯싶다. 새로운 맥거핀, 그랜드피아노 조율사 자격시험이 있으니까.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