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윤명철 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희대의 천재였던 몇 분이 돌아가셔서인지 이번 ‘스승의날’은 색다르게 다가왔다. 칠순을 몇 날 앞둔 내게 스승이 계셨는지, 내가 누군가에게 스승이었는지를 떠올려 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승’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 한번 생각하게 된다. 

사회구조 속에서 직업상 생존기술과 유효성 높은 지식을 전달해 준 ‘전달자(Transmitter)’인가? 학생들의 연약한 육체를 단련시키고, 정제된 지식들을 넣고, 북돋아가며 함께 땀 흘리는 ‘강사(Instructer)’인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미로를 헤매는 학생들의 떨리는 손을 붙잡고 확실성 높고 바른 삶을 살 수 있는 어딘가로 이끌어 주는 삶의 ‘선생(Guide)’인가? 삶의 본질을 이해하고 세상의 진리를 깨우치게 하는 지혜와 통찰력을 갖게 해 준 ‘도인(Guru)’인가? 학생들과 그들이 속한 사회, 그들이 마주할 미래를 위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자기 희생도 마다않는 ‘봉사자(Servant)’인가? 또 ‘나’라는 무한의 존재를 만들고 평생을 생활로 가르치며 생존을 지켜준 부모인 ‘동반자(Parterner)’인가? 

별 생각들이 다 떠오른다. 하지만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스승을 인격적이고 존경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렇게 알아왔다는 점이다. 우리말로 하면 ‘어른’이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고 배웠고, 또 그것을 실천하려는 흉내를 냈을까?

스승의 역할을 선택하거나 스승의 위치에 놓인 사람들은 우리와 모두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하고, 책임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세상이 어지러울 때 빛이 되고자 불을 밝혔고, 역사의 길을 가면서 남들이 주저하거나 후퇴할 때 앞장섰다. 이익과 명예를 탐하지 않고, 자기관리와 성찰을 계속하면서 바른 인격과 생활로 남들의 모범이 됐다. 

특히 근대 한국에서 스승의 역할을 담당하게 된 교사들은 다른 시대, 다른 지역 스승들이나 교사들과는 다른 점들이 있었다. 나라가 멸망해 갈 때, 결국은 빼앗겼을 때 많은 독립운동가들은 국내외에 학교들을 세웠다. 스스로 교사가 됐고, 일부는 독립군으로 활동했다. 식민지 백성들에게 민권, 독립, 해방, 자유, 민주라는 절대적 가치들을 알려 줬고, 쟁취하는 방략까지 가르쳤다. 분단과 전쟁, 그로 인한 절망감과 가난 속에서도 학생들에게 미래를 줬다. 이러한 상황을 ‘겪어 온’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교사’이고 ‘선생님’인 ‘스승’은 모두를 감동시킨 존재였고, 우리 삶을 지켜온 존재였다.

그런데 세상은 빠르게 변했고, 어느샌가 약자가 돼 버려 가난해진 스승을 존경하지 않고 무시하는 풍조까지 확장되는 중이다. 그래서인지 스승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스승의 가치와 의미를 붙잡아 두고 되살리려는 사회적 의지가 ‘스승의 날’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즈음은 그날의 주인공인 ‘스승’조차 사라지는 판국이다. 그 이유를 몇 사람들은 자본주의, 현대화, 서구화 등 불명확하고 편향된 의식을 반영한 단어를 사용하면서 당연한 수순으로 돌린다.

그렇지만은 않다. 우선 교사들 자체에 문제가 크다. 사명감을 방기한 직업인으로 안주했거나 사적 이익을 추구하고 자기 집단의 가치관을 실현시키는 수단으로 삼는 교사들의 비율이 많아졌다. 또 하나는 한국 사회의 기묘한 가치관과 분위기다. 한국은 깡패, 사기꾼들은 물론이고 사업가, 정치인, 심지어는 종교인, 예술가, 학자에 이르기까지 온갖 패거리들로 찼다. 인격과 사명감, 자기희생이라는 가치지향적 기준이 사라지고, 대신 패거리들의 논리, 세력 구축, 온갖 욕망들이 넘실거린다. 그러니 작당질을 하는 패거리들과 우두머리인 ‘보스’들이 ‘스승’의 정의를 왜곡시키고 참칭하면서 판을 친다.

이 변질된 ‘스승의날’에는 돌아가셨거나 회향을 앞둔 ‘스승들’께 따로 인사드리기가 송구스러울 지경이다. 

‘스승’이 사라진 사회. 그 텅 빈 공허 속에서 인간들은 갈등과 충돌을 수없이 겪다가 결국은 붕괴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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