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이선신 한국법치진흥원 이사장

지난 16일 윤석열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해 국회에서 통과시킨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발언에서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킨다"며 "간호 업무의 탈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한다"고 했다. 이어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거부한 데 이어 이번에는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건의를 받아들여 현 정부 들어 두 번째로 국회를 통과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우리 헌법 제53조 제1항은 "국회에서 의결된 법률안은 정부에 이송되어 15일 이내에 대통령이 공포한다"고 규정하고, 제2항은 "법률안에 이의가 있을 때에는 대통령은 제1항의 기간 내에 이의서를 붙여 국회로 환부하고, 그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국회의 폐회 중에도 또한 같다"고 규정한다. 또한 제4항은 "재의의 요구가 있을 때에는 국회는 재의에 붙이고, 재적의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전과 같은 의결을 하면 그 법률안은 법률로서 확정된다"고 규정한다. 

이처럼 대통령의 법안 거부권은 헌법 규정에 근거하지만, 대통령은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며, 너무 빈번하게 행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안, 간호법안의 구체적 쟁점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하지만 국회를 통과한 법안을 대통령이 거듭해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정치력 빈곤 상황’에 대해 그 원인과 책임이 어디에 있든 국민들은 불안감과 피로감을 느끼게 된다. 국민들은 여야와 정부가 좀 더 긴밀하게 협의해서 ‘대화와 타협’으로써 원만하게 입법이 진행되길 바란다.

지난 10일 윤석열 정부는 출범 1주년을 맞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년 재임기간 중 ‘헌법정신’과 ‘자유’를 유난히 강조했는데, 윤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강조했던 ‘공정과 상식’이 오히려 후퇴했다고 보는 국민들도 상당수에 이른다. 대통령 취임 1주년이 됐으니 임기의 5분의 1이 지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임기 말 1년여의 마무리 기간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는 임기의 3분의 1 가까이 지났다고 볼 수도 있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일 관계 증진 등 외교 분야에서 치적이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지나친 굴종외교’라는 비판이 제기되며 논란도 크다. 내치에서는 인권·경제상황이 후퇴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윤 대통령은 임기 초 3대 개혁(노동개혁, 교육개혁, 연금개혁)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했는데, 그 개혁이 지금 어디쯤 가는지 국민들은 소상히 알지 못한다. 이러한 개혁이 완결되려면 모두 입법을 거쳐야만 하는데, 지금과 같은 야당과의 불통 상태가 지속된다면 관련 개혁 법안들의 국회 통과를 예상하기 힘들다. 

정치는 모름지기 ‘수사’가 아니라 ‘대화와 타협’으로 작동돼야 하고, 그러려면 일단 지도자가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해야만 하는데, 지금처럼 야당을 백안시하는 태도를 지속한다면 어쩌면 대통령 재임기간 내내 야당의 협력을 이끌어 내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면 국정 운영의 대립·갈등 상태가 지속될 것이고,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에게 귀착된다. 

그러므로 윤 대통령과 여당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야당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 상대를 제압하려 하기보다 포용하는 큰 정치를 보여 주는 것이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방편이다. 지난 1년을 겸허하게 뒤돌아보고 국민의 목소리에 더욱 귀 기울여야 한다. 

윤 대통령은 "자화자찬은 안 된다"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고, ‘도어스테핑(출근길 약식기자회견)’을 중단한 지도 5개월여가 지났다. "지지율 0%, 1%가 나와도 해야 할 일은 하겠다"는 태도는 자칫 독선으로 빠질 수 있고, ‘국민주권주의’와 ‘섬기는 리더십’에 배치되므로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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