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지역사회부장
이강철 지역사회부장

국민(초등)학교 다닐 때 얘기다. 1∼2학년 때는 학생 수가 많아-그땐 몰랐지만-오전·오후반으로 나눠 등교했다. 오전반은 대략 8시 40분까지, 오후반은 12시 40분까지 학교에 가야 하고 일주일마다 바뀌었다.

오전반은 하교한 뒤 점심을 먹고, 오후반은 집에서 점심을 먹고 등교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한 번은 깜빡하고 오전반을 오후반으로 착각해 오후에 갔다가 때마침 정문 앞에서 하교 지도를 하는 담임 선생님과 마주쳐 꾸중을 들은 기억도 난다. 이날 엄마에게 쌍욕(?)을 듣고 혼나는 일은 당연지사.

당시 교실 바닥은 왜 하필 나무로 만들었는지, 주마다 하루는 모든 책걸상을 뒤로 밀고 분단별로 바닥에 앉아 고사리손에 마른 걸레를 들고 ‘삐까번쩍’ 왁스질을 해 댔다. 상태가 불량하면 집에도 가지 못한 채 고체 왁스를 꺼내 다시 바닥을 문질렀고, 하루 종일 옷에서 왁스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3학년부턴 도시락을 싸 갔다. 여름엔 별 상관없지만 겨울엔 교실 한가운데 자리한 난로 주변으로 양은 재질로 만든 ‘철밥통’ 도시락을 에워쌌다. 올려놓을 자리가 없으면 찬밥을 먹었기에 최대한 난로와 가까운 자리를 선점하려는 경쟁이 치열했다.

월요일은 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운동장에서 하는 월례조회 때문이다. 비 오는 날만 빼고선 춥거나 덥거나 날씨에 상관없이 강행했다.

군대 조교를 쏙 빼닮은 젊은 선생님들이 "앞으로 나란히"를 외치며 수천 명의 오와 열을 맞추는데, 장난치다 걸리면 흙바닥에서 엎드려 뻗쳐를 시켰다. 무섭기로 소문난 선생님에게 걸리면 주먹 쥐고 뻗쳤다. 손바닥과 손가락에는 자갈이 박힌 자국이 한동안 선명했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꼬박 서서 언제 끝나나 기다리기도 잠시, 이내 한두 명이 쓰러지는 일은 다반사였고, 모두들 양호실로 실려 갔다.

앰프 장비가 좋지 못한 탓에 "OO국민학교∼국민학교∼", "학생∼학생∼", "여러분∼ 여러분∼" 운동장에 울리는 교장 선생님의 마이크 소리도 옛 기억을 떠올리는 내 귓속에 메아리친다.

미술시간도 기억난다. 태극기는 기본이요, 시기만 되면 불조심·안전·방공포스터를 그려 댔다. 21세기 모습을 주제로 한 그림도 해마다 그렸다. 그럴 때면 로봇이나 하늘, 우주가 단골 손님처럼 등장했다. 로봇이 요리한 음식을 차려 주거나 공부를 시켜 주고, 영화 ‘아이언맨’을 연상케 하는 기계장비를 등에 맨 사람이나 자동차가 하늘을 난다.

우주까지 다다른 몇 층인지 가늠이 안 되는 빽빽한 고층 건물에도 사람이 산다. 샛노란 불을 내뿜으며 날아가는 로켓도 빠질 리 없다. 로켓 모양 비행체를 타고 가까운 달이나 화성에 가는 우주여행을 하고, 다른 행성에는 흔히 아는 강대국들의 국기가 이미 꽂혔다.

지금은 흔해 빠진 비행기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던 시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스케치북’에 그린 미래는 정말 꿈 같은 세상이었다.

선생님은 그림을 가리키며 우리가 크면 이런 날이 온다고 설명했고, 어린 날 기자는 영화 같은 그날이 하루빨리 오길 꿈꿨다.

해서 였을까. 공상과학 만화는 날 저문 지 모르고 뛰어놀던 아이들을 TV 앞에 모여들게 만들었고, 인기 로봇이나 우주왕복선 같은 장난감은 없는 집이 없었다.

하지만 기자가 상상하던 모습과 달리 미래는 가깝지 않았다. 앞서 열거한 어느 하나 실제로 널리 쓰지 못했고, 상상 속 바람은 기억 저편에만 머물렀다. 그러다 지난해 한국 최초 달 탐사선 다누리가 우주로 날아올랐다.

지난 26일에는 국내 기술로 개발한 한국형 발사체인 누리호(KSLV-Ⅱ) 3차 발사에 성공했다. 35년 전 고사리손으로 스케치북에 그린 상상이 어느 정도 현실이 된 셈이다. 샛노란 불을 내뿜으면서 말이다.

이 과정을 지켜본 국민 모두 자부심을 가졌을 터. 기자도 감회가 남달랐다. 오는 2031년에는 한국형 달 착륙선을 보낸단다. 반백을 넘긴 나이인데도 우주여행 꿈을 꿔도 될까. 그래도 어릴 적 상상의 나래를 펼칠 그날을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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